- 열린 해석 가능한 중·단편 7작품

소설가 정재운이 지난해 연말 펴낸 첫 소설집 ‘경이로운 동그라미’(도서출판 강)는 ‘이 작가를 한번 만나고 싶다’는 독후감을 남겼다. 그가 ‘첫 소설집’에 담아 내놓은 여러 작품은 ‘뻑뻑하다’ ‘읽는 이에게 들러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밀도가 높다’는 인상을 남겼다. 그런 밀도에 밀린 탓인지 가끔 진도가 느려지기도 했지만, 신진 작가로는 흔치 않은 개성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 그를 국제신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첫 소설집 ‘경이로운 동그라미’를 낸 소설가 정재운이 부산교육대학교 교정 벤치에 앉아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정 작가는 1985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202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이니 데이’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동아대에서 철학과 문예창작을 전공했고, 같은 대학 문예창작학과 대학원에서 2000년대 소설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실은 써놓은 소설이 꽤 있습니다. 수십 편은 되지 싶어요. 등단하기 오래전부터 작가를 지망하며 소설을 썼거든요. 이번 책은 첫 작품집이어서 저라는 소설가의 면모가 많이 담긴, 저라는 작가가 형성된 과정이 스민 작품을 골라 보려고 했죠.”

곱씹어 보니, 작가 자신이 보기에 어여쁘고 잘 빠진 작품을 고르기보다 ‘나다움’이 좀 깊게 서린 소설에 눈길을 더 줬다는 뜻 같았다. 사실, 그렇게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소설에 관한 그의 진지함이 짐작됐다. 첫 소설집에는 단편 6편과 중편 1편을 실었다.

표제작 ‘경이로운 동그라미’는 좀 끔찍한 장면이 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 공부를 돕는 동아리 성격의 동그라미 센터에서 교사로 인연을 맺은 청년 준엽과 현철이 있다. 준엽은 영리한 데가 있고, 현철은 진지한 면모에 약간의 미련함이 섞인 느낌이다. 두 사람은 ‘완전한 동그라미’ ‘동그라미의 완전성’으로 상징되는 이상과 가치는 공유한다. 그것이 봉사 활동에 나서게 한 원동력일 것이다. 세월이 흘러 청소년이 된 그때 그 ‘제자들’을 다시 만난 현철은 그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위기에 몰린다. 말하자면, 배신당한다.

영락없는 사회소설인 이 작품을 놓고 정 작가는 “실은 예술과 예술가에 관한 고민에서 시작한 소설”이라는 뜻밖의 대답을 들려줬다. 완전성에 육박하는 아름다움·새로움을 추구하는 예술가 앞에 놓인 곤경과 난관을 상징하려 했다는 뜻인데, 설명 없이 그냥 읽으면 이런 배경을 거의 눈치챌 수 없다. “작가 의도와 별 상관없이 독자 나름으로 읽는 그 가능성을 저는 좋아한다”고 그가 덧붙였다.

‘레이니 데이’는 김치공장에서 일하는 동남아 노동자인 엄마 구금비와 초등학생 딸 신은비를 덮치는 한국 사회의 차별·곤경을 날카롭게 그렸다. 반에서 한글도 제일 잘 쓰고 김치도 한 조각 남김없이 꼭꼭 잘 씹어 모두 먹는 신은비가 겪는 차별 장면은 인상 깊다. ‘지구라는 집을 놓고 생각해 보면’에서는 집을 놓고 가난한 지식인 부부가 나누는 불편한 대화가 주인공 남성의 회상 장면과 절묘하게 갈마들며 문체와 대화 측면의 묘미를 낳는다.

유일한 중편 ‘악어-이상한 사건, 혹은 한 사내에 관한 이야기’에 관해 그는 “한동안 날마다 부산서 거제도 조선소 쪽으로 넘어가 취재하며 썼다”며 “중편은 발표 기회가 적어 어려움은 있지만, 중편 규모 서사로 우리 사회와 사람살이에 관해 쓰는 데 관심이 많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