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졸중 투병하다 암까지 덮쳐
- 병상 詩에 가득 담긴 긍정의 힘

휠체어를 타야 하는 김성배 시인을 만나 이야기 나누려고 식당과 찻집을 찾아다니는 일은 도시 곳곳에서 장벽에 부딪히는 일의 연속이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힘들고 불편할 줄 몰랐다. 무심코 지나쳤던 길바닥의 작은 턱과 계단 한 칸이 모조리 장애물이고 적이었다. 뇌졸중에 암까지 겹쳐 휠체어에 탈 수밖에 없는 김 시인은 오죽할까. 그런 그가 지난달 하순 두 번째 시집 ‘내일은 걷는다’(모악 펴냄·사진)를 내놓았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투병 활동에도 시집 ‘내일은 걷는다’를 펴낸 김성배 시인이 휠체어에 탄 채 책을 보고 있다. 김 시인은 뇌졸중 재활 도중 암이 발병해 힘든 치료를 받느라 휠체어를 타야 한다. 오른쪽 사진은 쓰러지기 전 김 시인이 해성출판사 앞에서 찍은 모습. 조봉권 선임기자·국제신문DB

뇌졸중의 습격을 받아 얼마 전까지 사경을 헤맸다던 사람이, 열심히 재활하다가 지난해 5월 덜컥 까다로운 신체 부위의 암 진단을 받고 항암 중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시집을? 지난 1일 부산 동래구 사직동 자택 근처로 찾아가 김 시인을 만났다. 1964년생 동갑내기 아내 백해숙 씨가 함께했다.

첫 시집 ‘오늘이 달린다’를 잇는 새 시집 ‘내일은 걷는다’에 ‘지팡이’라는 시가 있다. “재활운동 할 때는 한발짜리/ 집에서는 네발짜리를 짚는다/ 너무 오랫동안 같이 있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정이 들었다/ 그런 정을 떼고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아내가 보는 가운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너무 놀라서 박수와 고함을 지르고 엄지 척을 한다/ 등에 업혀 있던 손녀도 덩달아/ 손을 흔들고 만세를 한다// 이것이 나의 삶이다”(전문)

‘이것이 나의 삶이다’에서 현실을 긍정하는 대범함도 느껴진다. 하지만 삶은 훨씬 혹독했다. 암이 찾아왔다. 시 ‘항암치료 1’이 있다. “항암치료를 받았더니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한 움큼씩 빠진다/ 너무 힘들어 머리를 빡빡 깎았다/ 시원하다/ 암도 머리카락처럼 없어지면/ 좋겠다 시원하게”(전문) 여기도 오묘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기운이 있다.

김 시인은 “부산 중구 중앙동 해성출판사에서 고 최해군 작가 문학비 건립 추진 상황을 검토하다가 쓰러졌다”고 했다. 아내가 “쓰러진 직후 2개월은 큰 병원, 22개월은 해운대의 재활병원에 있었다. 통원치료하며 재활에 힘쓰던 지난해 5월엔 암 진단을 받았다”고 떠올렸다.

김 시인은 1989년 해성출판사를 창업해 35년 건실하게 운영했다. 부산 문화콘텐츠 기업의 선구라 할 부산문화연구회를 창립해 문학기행(동보서적·국제신문 공동 주최), 시가 있는 도시철도 사업, 국제문예아카데미, 문학콘서트 등을 펼쳤다. 그는 2007년 시 전문지 ‘시평’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스물다섯 살에 창업한 문화콘텐츠 기업 해성출판사는 지난해 접었다(국제신문 지난해 12월 20일 자 14면 보도).

시인의 아내는 “아픈 남편이 병석에서 시를 쓰는지 몰랐기에 놀랐다”고 했다. “쓰러진 지 8개월 만에 어눌하게 말할 수 있게 됐죠. 병원 있을 때 남편은 의료진과 겨우 필담으로 대화했습니다. 그 필담을 노트에 적어 놓았더라고요. 그 노트는 이 시집의 바탕이 됐습니다. 치료받을 때 고통스러워 눈 감고 있는 줄 알았았는데 그런 순간을 간직했다가 시로 써 놀랐습니다.”

김 시인이 육필로 쓴 시를 백 씨가 스마트폰으로 찍어 전송하면 딸과 아들이 타이핑하는 가족 협업으로 ‘내일은 걷는다’는 나왔다. 인터뷰 말미, 김 시인은 “주례중학교 다닐 때 은사인 권봉영 이정금 선생님의 격려와 애정이 큰 힘이 됐다고 기사에 써줄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문득 느꼈다. ‘아! 여전히 넓은 이 오지랖. 그는 살아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