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오로라를…’ 등 단편 7편
단편소설의 미학 또는 매력을 꼽자면, ‘스윽’ 하고 독자 내면으로 스며들어 버리거나 읽는 이의 마음 한 구석을 한순간 베어버리는 긴장미·긴장감이 먼저 떠오른다. 단편소설은 짧기에, 이런 ‘스윽’의 순간은 독자가 눈치 채지 못한 틈에 일어나버릴 수 있다. 읽는 사람이 잘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작품 또한 공감을 불러일으킬 섬세한 호흡을 갖춰야 한다. 이런 특징을 갖추고 독자와 상호작용하는 단편소설을 ‘우리 삶에 말을 걸어주는 예술’이라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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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소설집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도서출판 강)를 낸 서정아 작가. 서 작가는 “이번 소설집 또한 사람 사이 관계에 관한 질문이 바탕을 이룬다”고 했다. 작가 제공 |
부산 소설계 중견 서정아 작가가 세 번째 소설집을 최근 내놓았다. 제목은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이다. 책에는 단편 7편을 실었다. 이들 작품에서 받은 큰 느낌은 ‘우리 삶에 말을 걸어주는구나’였다. 순간순간 소름이 오소소 돋는 공감 가는 장면이 이어진다. 표제작 ‘우리는 오로라를 기다리고’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가장 먼저 우리를 흔들어놓고 매료시켰지만 순간의 마음을 영원히 붙잡아두지는 못했다.” 이 문장은 사람이 살면서 거의 반드시 부딪히는 딜레마를 표현한다.
표제작의 주인공은 평범한 삶을 살다가 사랑에 빠지지만, 그 사랑 때문에 벽에 부딪힌 한국 여성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면서도 동시에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네’와 비슷한 평범한 사람이다. 주인공은 오로라를 보려고 북유럽으로 여행을 간다. 거기에는 친구인 태국 여성 쏨과 노르웨이인 남성 카알이 산다. 태국에서 뜨거운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노르웨이 트롬쇠로 와서 함께 산다. 작가는 카알과 쏨의 현재 관계를 이런 장면을 통해 내비친다. “(두 사람은) 애초에 눈싸움을 빙자해 그냥 싸움을 하고 싶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은 과연 올지, 끝내 안 올지 모를 오로라를 기다리며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응시하고 그 시선을 다시 자기에게 비추면서 삶의 호흡을 찾아간다. 이쯤에서 서정아 작가에게 이번 작품집을 관통하는 주제 의식이 있는지 물었다. 작가는 답했다.
“우리가 기다리는 오로라는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나타난다 해도 내가 기대했던 형태의 오로라가 아닐 수 있겠지요. 그러니까 그런 환상에 기대지 않고, 카메라 뷰파인더가 아닌 내 두 눈으로 나와 타인과 세계를 똑바로 응시하는 것, 그게 설령 고통일지라도 제대로 바라보고, 느리더라도 진정하게 실체에 다가서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거대한 환상에 기대지 않고도 살아낼 내면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이번 작품집 전반에 담겼어요.”
수록 작품 ‘거미줄+’로 가면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인생의 최전선에서 공감력이 부족하고 무감각한 강한 자들이 구석에 몰린 예민한 개인에게 무심하게 상처를 안기는 장면이 선연하다. 상처받는 쪽이던 주인공 며느리는 견디지 않기로 결정한다. 끝 대목에서 시모가 말한다. “우리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려고 노력했는데.” 며느리가 답한다. “…알아요.” 시모가 답한다 “알긴 뭘 알아. 가족이 뭔지도 모르는 애가.” 며느리는 보육원 출신이다.
‘서로에게 좋은 일’에서는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에서 받았던 서늘한 느낌이 살아났다, 친절한 듯하면서도 선명한 차별의 선을 그어둔 사람들 모습을 작가는 드러낸다. ‘최초의 부고’ ‘유실물’ ‘황벽나무 노란 속껍질’도 결이 섬세하다. 서 작가는 200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으로 등단했다. 앞서 관계에 주목한 작품집 ‘이상한 과일’ ‘오후 네 시의 동물원’을 냈고 2024년 부산소설문학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