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작·미발표 신작 등 총 64편
- 안수현 교수가 시조집 번역 출간
- 日 문단 정식 출판 사실상 최초
- 韓 현대시조 지평 확산 등 성과

부산 시조인이 힘을 모아 한국의 현대시조를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 유수의 문학출판사에서 출간했다.

일본의 출판사 스이세이샤에서 펴낸 ‘한국현대시조사가선집’을 들고 왼쪽부터 번역자인 안수현 부산가톨릭대 학술연구교수, 작품을 실은 이광 손증호 정희경 시조시인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오른쪽 아래 네모 안은 이날 자리를 함께하지 못한 공동 저자 변현상 시조시인이다.

활발하게 창작 활동을 하는 현역 시조시인들의 시조 작품이 정식 일본어 번역본으로 출판돼 일본 문단과 독자에게 직접 전해진 사례는 사실상 최초다. 전례를 찾기 어렵다. 한국 현대시조의 국제 교류와 지평 확산 측면에서도 뜻깊은 성과다. 특히, 한국 시조단에서 비중이 큰 부산에서, 부산 시조인들이 시조 세계화를 위해 ‘누가 해주겠거니’ 하는 막연함을 털고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한 점이 인상 깊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안수현 학술연구교수는 시조시인·문학평론가·문학연구가·일본문학 번역가이다. 안 교수가 일본어로 번역한 ‘한국현대시조사가선집(韓國現代時調四歌仙集)’이 일본 도쿄에 있는 스이세이샤(水聲社)에서 지난달 나왔다. 가격은 2500엔이다. 이 현대시조집에는 부산 시조계의 깊이와 새로움을 함께 인정받는 손증호 이광 변현상 정희경 시조시인의 작품을 모두 64편 실었다. 안 교수와 정희경 이광 손증호 시조시인을 최근 만났다. 변현상 시조시인은 아쉽게 이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

스이세이샤는 책 제목을 ‘한국현대시조사가선접’으로 했는데, 사가선(四歌仙)은 이 책에 참여한 시조시인 4인을 노래하는 신선에 비유한 표현이다.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줄임말인 시조가 본질상 노래(歌)이기도 한 점이 책 제목에서 더 또렷이 드러난다. 이광 시조시인이 설명했다. “우리 네 명이 대표작과 미발표 신작을 합쳐 각각 16편씩 실었다. 간결하게 한 수로만 이뤄진 단수시조만 수록했고, 한글 원문도 책에 함께 실었다. ”

손증호 정희경 시조시인은 “2023년 6월 처음 모였는데, 발간까지 2년 걸렸다. 우리 고유 문학 장르인 시조의 운율을 잘 살릴 수 있고, 일본어로 옮겼을 때 뜻이 잘 통할 작품을 싣고자 했다”고 말했다.

안 교수가 말했다. “이 책에 작품을 실은 시조시인 4인은 개성이 선명한 분들이다. 공통점이 있다. 시조가 간직한 전통 요소를 현대 감각으로 풀어내는 점이다.” 4인은 한국 시조단 전체에서도 존재감이 분명한, 최전선의 시조인들이다. 각각 ▷인간 존재와 자연에 대한 깊은 성찰(손증호) ▷사물을 관조하는 섬세한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이광)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함(변현상) ▷전통적 틀을 넘어서려는 시도와 현대적인 감각의결합(정희경)으로 수록 작품 특징을 요약할 수 있다고 안 교수는 말했다.

‘현대시조를 현대 일본어로 옮기는 일이 힘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안 교수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주제와 내용, 시조 특유의 운율·음악성·뉘앙스, 긴장미와 승화미를 일본어에 담는 일은 힘든 과제였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일본 측 출판사를 선정하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다행스럽게 명망이 높은 스이세이샤와 손잡았다. 일본 출판사가 매우 일을 꼼꼼하고 진지하게 하는 점 또한 인상 깊었다”고 덧붙였다.

이광 정희경 시조시인은 2023년 5월 우형숙 시조시인이 영문으로 번역한 시조집 ‘K poem sijo: the Root of Korean Wave’ 전자책을 세계 최대 쇼핑몰 아마존에 올려 자신들이 쓴 현대시조 60편을 소개했다. 부산 시조인들이 시조 세계화에 진취적으로 나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