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문화라이프부 책팀(조봉권 선임기자·박현주 책 칼럼니스트)은 ‘2025년 상반기 인상 깊은 책 12선’을 꼽았다.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이 함께 마련한 ‘부산바다도서관’의 상반기 행사 일부가 지난 15일 수영구 민락수변공원에서 열려 많은 시민이 야외에서 독서를 체험하고 있다. 주말인 28일과 29일에도 부산바다도서관 프로그램은 민락수변공원에서 펼쳐진다. 이원준 기자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전국 출판사 또는 저자가 국제신문 문화라이프부로 실물을 보내온 책 가운데 매주 금요일 자 책면에 보도된 도서를 주요한 대상으로 삼았다. 책면뿐만 아니라 문화면에 소개한 책도 후보작에 포함했다.

책에 관해 ‘품평’을 하기보다 각 담당자가 읽다가 나름대로 깊은 인상을 받아 독자와 한 번 더 나누고 싶은 책을 각각 6종씩 골랐다. 그래서 ‘인상 깊은 책’이다. 이를 통해 책에 관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더 많은 관심이 생기기를 바란다.

■ 조봉권 선임기자의 인상 깊은 책 6선

# 그리운 사람, 프란치스코의 삶 속으로

나의 인생- 프란치스코 교황,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 지음 /염철호 옮김 /윌북 /1만9800원

프란치스코 교황(1936~2025)은 올해 4월 21일 선종했다. 가장 친근한 교황, 약한 이를 위해 헌신한 성자, 불의와 부패 앞에서 분노한 지도자, 세계의 어른, 그리운 사람…. ‘교황 할아버지’를 회상하거나 표현하는 말은 애틋하고 따뜻하다. ‘나의 인생’은 ‘프란치스코 교황 최초 공식 자서전’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탈리아 교황청 전문기자 파비오 마르케세 라고나와 프란치스코 교황이 함께 써 내려간 이 책은 프란치스코 교황 본인의 육성으로 삶을 회상한다. 이 점이 선명하고 미더운 특징이다. 이 책에서 만난 인간 프란치스코는 연민과 용기를 모두 간직한 사람이다. 다정하고 담대하다.


# AI로봇이 배우자가 되는 세상 온다면…

멸종과 이혼의 연대기- 정광모 소설집 /산지니 /1만8000원

단편소설 7편을 실었다. ‘첫 이혼’은 고도로 발달한 기술로 만든 ‘AI 로봇 남편’을 구매해 오랜 세월 행복하게 잘 살던 여성에게 닥친, 당혹스러운 위기를 담았다. ‘멸종을 기록하는 방법’은 아주 아주 먼 미래가 시대 배경이다. 긴꼬리원숭이에서 진화한 긴꼬리족이 지구를 지배한다. 현재의 우리 인류(사피엔스)가 남긴 흔적은 사실상 없다. 긴꼬리족의 고고학계에서 이해할 수 없는 유물을 잇ㄸ라 발견하자 논쟁이 펼쳐진다. 현생 인류가 왜 망했는지 조금씩 드러난다. 작가가 심어 놓은 메시지도 자연스레 딸려 나온다. 전개가 흥미롭다. 강력하게 눈길을 끄는 작품으로 ‘휴먼 장르’를 뺄 수 없다.


# 지방소멸 막을 ‘지역인재정책’ 제안서

지역인재정책- 김종한 박성익 지음 /문우사 /3만5000원

경성대 김종한 박성익 교수가 쓴 ‘지역인재정책’은 이 분야와 관련된 자료·동향·정책·제안 등을 두루 집대성했다는 느낌을 주는 역작이다. 지역인재정책이라는 영역을 어엿한 연구 및 학문의 분과로 정립한 뒤 그 중요성을 실효성 높게 강조한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지역인재정책이 중요한 독립 분과라는 생각이 든다. 두 저자가 통계 등을 꼼꼼하게 제시하기에 거기서 얻는 수확도 있다. 예컨대 경제·고용 지표를 살폈더니, 최근 충청권이 뜨는 현상을 볼 수 있었다. 부산 지역 관련 지표는 여전히 나쁘거나 어두웠다. 세계 여러 나라의 지역인재정책을 알려주는 등 꽤 유용한 정책제안서로 다가왔다.


# 한평생 농본 자치에 힘쓴 천규석 선생

사람들은 어디 갔노, 청산만 날 부르네- 천규석 지음 /전망 /4만6000원

농본사상가 천규석 선생이 본인의 삶과 활동을 회고한 873쪽 분량의 책이다. 1938년생으로 소농두레(농본자치) 운동에 힘쓴 천규석의 치열한 삶을 담은 담담하고도 뜨거운 책이다. 지난 4월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삶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소중한 책”이라는 말을 남겼다. 누군가 남긴 삶이라는 책에서 배우는 일은 독서의 큰 기쁨이다. 경남 창녕군 영산 출신 천규석은 젊은 시절 서라벌예술대와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민주화 운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1965년 귀향 후 평생 농촌공동체재생운동 등을 펼쳤다. 이와 함께 생태운동가 고 김종철 선생과 인연을 맺고 ‘녹색평론’ 등에 글을 썼다.


# 인생 2막…뜨겁게 성공한 고수들의 비법

인생 2막, 고수들의 인생작법- 고영삼 지음 /호밀밭 /1만8000원

이 책은 뜨겁다. 온도가 높다. 재미도 있다. 인생 2막에서 성공한 이들이 겪은 사례가 펄떡펄떡 뛰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이 책에 관해 국제신문에 보도할 때 “전철 안에서 이 책을 읽으며, 내려야 할 역을 놓칠 뻔한 위기를 몇 번이나 넘겼다’고 썼는데 과장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생이모작포럼 고영삼 공동대표가 2023년 펴낸 ‘인생이모작, 한 번 더 현역’ 후속편이다. 저자 고영삼은 사회학자이며 부산인재평생교육진흥원장 등을 지냈고 현재 생애설계전문가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고수로는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 깊은산속옹달샘 고도원 이사장, BS그룹 박진수 회장 등 26명이 있다.


# 부산 현대사 걸판지게 풀어낸 희곡들

부산을 연극하다- 정경환 희곡집 /해피북미디어 /2만5000원

중진 연극인 정경환 극단 자유바다 대표가 쓴 희곡을 모은 책. 이 책 맨 앞에 실은 희곡 ‘영도다리 점바치’를 읽다가 내용 속에 빠져들었다. 등장인물들의 말투와 행동이 거칠고 억센 탓에 독자로서 조금 주눅이 들고 ‘내용이 너무 센 거 아닌가, 부산 사람이 저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희곡은 부산 현대사를 자갈치 시장을 터전 삼아 걸판지게 풀며 독자와 공명하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황금음악다방’은 오래전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다방에서 활동하던 대중음악인의 삶을 또 한 번 실감 나게 풀어놓는다. 부산과 인연이 깊은 가수 배호 이야기도 나온다. 우선, 재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