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포돌스키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있는 폴란드의 보루츠를 위로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독일이 이웃 폴란드를 1-0으로 제압하고 맨 먼저 16강 진출을 사실상 확정짓던 14일 밤(현지시간) 독일 중서부의 공업도시 뒤셀도르프의 라인강변에는 난리가 났다.

라인강을 따라 1㎞ 이상 늘어선 둔치의 간이 맥주집들마다 대형 스크린으로 경기를 시청하는 축구팬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2만여 명의 축구팬 가운데 90% 이상은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독일 팬들이었고 일부 폴란드인이 섞여 있었다. 폴란드인들은 수적으로 열세였지만 기 싸움에서 지지 않으려는 듯 폴란드 국기를 열심히 흔들고 '폴스카'를 외쳤다.

폴란드 선수가 한 명 퇴장당한 가운데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득점을 못해 답답해 하던 독일 팬들은 후반 추가시간에 선취 결승골이 나오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4유로(약 5000원)나 하는 맥주를 한 잔씩 들고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괴성을 울리고 발을 굴렀다.

이날 경기는 여러 면에서 흥미를 자아냈다. 독일 대표팀의 투톱 클로제와 포돌스키가 공교롭게 모두 폴란드 태생이거나 부모가 폴란드인이었고, 두 나라는 '나치'라는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물론 한쪽은 가해자, 한쪽은 피해자로 입장은 다르다. 소위 국민 감정상 애초부터 물러서기 힘든 경기였다.

독일 민영TV는 경기 전날밤 이색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눈을 가린 폴란드와 독일 선수 각 2명씩이 2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서 축구 경기를 했다. 한 명은 골키퍼, 한 명은 공격이었다. 네 명 모두 눈을 가렸기 때문에 골대 뒤에서 감독이 선수들에게 '앞으로 가라' '옆으로 가라' '슛을 하라'는 식으로 움직임을 지시했다. 결과는 독일의 4-0 완승. 독일 관객들이 마치 실제 경기를 이긴 것처럼 좋아하는 장면이 화면에 잡혔다.

독일 월드컵의 슬로건은 '모두 친구가 되는 시간'이다. 하지만 승패마저 사이좋게 나눌 수는 없는 모양이다. 더구나 어떤 식으로든 아픈 역사를 공유한 이웃이라면 승리한 쪽의 기쁨은 더 달콤할 것이고 패배는 한층 씁쓸할 것이다. 결국 희비는 엇갈렸다. 그것이 월드컵이고 축구다.

독일 쾰른 = 김용호기자 kyh73@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