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축구연맹 랭킹 2위 체코가 48위 가나에 무너졌다. 체코는 17일 오후(이하 현지시간) 열린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와의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 E조 2차전에서 0-2로 허무하게 무릎을 꿇었다.

이 경기는 그동안 별다른 이변없이 진행돼온 이번 대회 최대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물론 죽음의 C조와 더불어 강호들이 모여있는 '숨막히는 E조'에 속했던 이들의 난타전은 어느 정도 예고가 됐었다. 하지만 1차전에서 미국을 3-0으로 완파했던 체코가 이탈리아에 0-2로 패한 가나에 이렇게 무너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도 프라하에서 열차로 불과 3시간여 거리의 라이프치히 중앙역과 시내 곳곳에서 중계방송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체코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날 오후 라이프치히 거리의 체코 팬들은 모두 고개를 떨구었다. 이탈리아와의 3차전이 남아 있어 체코에도 16강 진출의 희망은 있다. 그러나 체코의 패배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은 이번 대회에서 두드러지는 동구권 축구의 부진 때문이다. 동구권은 그동안 1998년 프랑스월드컵 3위의 크로아티아, 1994년 미국 월드컵 4강의 불가리아 등 유럽축구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또 시기마다 크로아티아의 수케르나 불가리아의 스토이치코프와 같은 대스타들도 등장했다. 당당한 체구를 바탕으로 힘과 스피드, 개인기가 조화된 동구권 축구는 같은 유럽임에도 이탈리아나 프랑스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고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번 월드컵에는 체코를 비롯, 폴란드, 세르비아-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우크라이나 등 동구권 5개 국가가 본선에 올랐다. 유럽에 배정된 14장 가운데 3분의 1이 조금 넘는다. 이 가운데 폴란드는 이번 대회 돌풍의 주역 에콰도르와 개최국 독일에 잇따라 패하며 예선 탈락이 확정됐다. 죽음의 조에 속했던 세르비아 역시 아르헨티나에 0-6이라는 치욕적인 패배로 체면을 구겼다. 유럽 예선에서 최소 실점의 막강 수비력을 자랑했던 세르비아는 아르헨티나의 파상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셰브첸코를 앞세운 우크라이나 역시 스페인에 0-4로 패하며 충격에 빠졌다. F조의 크로아티아도 1차전에서 브라질에 0-1로 졌다.

폴란드와 체코 등은 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국경을 넘어온 많은 동구권 팬들은 월드컵 개막 전만 해도 거리를 활보하며 자국의 응원가를 목청껏 불러댔다. 하지만 지금 이들의 모습은 간 데 없다. 아르헨티나나 잉글랜드 등 기세등등한 응원단과는 대조적이다. 아직 1, 2경기씩을 남겨둔 체코와 우크라이나가 동구권의 자존심을 세울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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