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의눈' 시청자 제보 2벌타
- 스코어 오기로 추가 2벌타
- 결국 연장서 유소연에 패

메이저 대회에서 극히 보기 힘든 실수에 메이저급 '매의 눈'이었다. 3일(한국시간)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첫 메이저 대회인 ANA인스퍼레이션에서 한국의 유소연이 우승컵을 안았다. 우승 경쟁에서 다소 비켜나 있던 유소연이 대역전극을 펼친 데는 프로 선수로서는 보기 드문 4벌타를 한꺼번에 받은 렉시 톰슨(22·미국)의 '역대급' 실수가 있었다.

	3일(한국시간) 렉시 톰슨이 연장전이 끝난 후 쓸쓸한 표정으로 그린을 벗어나고 있다. LPGA 제공

대회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12번 홀이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톰슨은 이 대회 두 번째 우승을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전반에 3타를 줄인 데 이어 직전 11번 홀에서도 버디를 추가해 17언더파로 3타 차 선두를 달렸다. 그러나 이때 전날 17번 홀(파3)에서 한 실수가 그의 우승 꿈을 날려버렸다. 톰슨은 이 홀에서 30㎝ 정도 거리의 파 퍼트를 남겨뒀다. 바로 퍼트해도 되는 상황에서 톰슨은 마크했다가 곧바로 다시 공을 놓고 퍼트했다. 집에서 TV를 통해 지켜보던 골프팬의 날카로운 눈에 그의 실수가 포착됐다. 공을 다시 놓으면서 원래보다 2.5㎝ 정도 홀에 가까운 곳에 놓은 것이다.

이런 사실을 담은 이메일 제보가 다음 날 접수됐고 결국, LPGA 투어는 이 사안을 검토한 끝에 규정에 따른 벌타를 부과하기로 하고 톰슨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톰슨이 12번 홀에서 보기를 한 직후였다. 톰슨은 공을 마크한 지점이 아닌 홀에 가까이 놓았다는 이유로 2벌타, 잘못된 스코어카드를 제출했다는 이유로 2벌타 등 총 4벌타를 한꺼번에 받았다. 이에 따라 12번 홀 보기를 더해 5타를 순식간에 잃으면서 3타 차 단독 선두를 달리던 그는 5위로 추락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해 골프 규정이 개정돼 실격은 피했다는 것이다. 경기자가 스코어 카드 제출 전에 규칙 위반을 몰랐다면 실격 대신 2벌타를 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경기위원으로부터 4벌타 소식을 처음 전해 들은 톰슨은 처음엔 "농담이 아니냐"고 되물었다가 상황이 심각한 것을 알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TV 중계 카메라에는 톰슨이 경기 도중 눈가를 훔쳐내는 모습이 자주 잡혔다. 톰슨에게 4벌타 소식을 전한 LPGA 투어 경기위원 수 위터스는 "오늘 밤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고 탄식했다.

마음을 다잡은 톰슨은 이후 2타를 더 줄여 유소연과 연장전에 들어갔지만 끝내 미션힐스 컨트리클럽의 '포피 폰드'에 빠질 기회는 오지 않았다. 타이거 우즈가 트위터에 "시청자가 경기위원이 돼서는 안 된다"며 "렉시, 어쨌든 우승해"라고 올린 응원도 힘이 되지는 못했다. 준우승으로 대회를 마친 톰슨은 "고의로 공을 홀에 더 가까이 놓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며 "그래도 끝까지 다시 경기에 임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유소연에게도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마음을 다독였다.

이진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