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에 함께 나서는 건 처음이라는 부자(父子)는 연신 야구장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20년 넘게 다녀 익숙할 법도 한 사직야구장이지만 떠나 있던 시간만큼 어색한 곳이 돼 버렸다.

롯데 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가 열린 3일 오후 사직야구장에 손경구-손용석 부자가 시구와 시포에 나섰다. 두 사람은 각각 1군 버스 기사와 선수·코치로 롯데와 인연을 맺었다.

1990년부터 롯데 1군 버스를 몬 손 씨는 2011년까지 21년간 운전대를 잡았다. 현재는 정년퇴직 후 개인택시 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회사 떠난 지가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시구 행사 덕에 아들과 오랜만에 야구장에 와 기쁘다”고 웃었다.

2006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을 받아 롯데 유니폼을 입었던 손용석은 현재 롯데 퓨처스(2군) 작전코치로 재직 중이다. 손 코치는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 같아 더 뜻깊은 자리”라고 말했다.

	롯데 자이언츠 퓨처스 작전코치 손용석(왼쪽)과 아버지 손경구 씨가 3일 부산 사직야구장을 찾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배지열 기자

손 씨는 아들이 롯데로 온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을 아직도 벅찬 감정으로 기억하고 있다. “말할 수 없이 기뻤죠. 당시 양상문 감독(현 LG 트윈스 단장)님이 서울로 이동하는 길에 고등학교 야구 중계로 아들이 뛰는 모습을 보시더라고요. 안타 하나라도 치면 크게 반응하셔서 관심을 가지니까 ‘앞 보고 운전하이소’라고 농담을 건네기도 하셨어요. 그날따라 아들이 잘 해서 좋은 이미지를 준 것 같습니다.”

손 코치는 구단 직원인 아버지 덕에 지명 소식도 일찍 알았다. 5살 때부터 사직야구장을 찾으며 야구에 재미를 붙인 그에게 야구는 곧 롯데였다. 꼭 롯데 선수가 되고 싶다는 소원이 이뤄진 순간이었다.

“드래프트 당일까지도 확신이 없었어요. 2차까지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아버지가 회사에서 듣고 먼저 알려주셨죠. 저도 정말 기분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롯데 자이언츠 손용석 퓨처스 작전코치가 5살이던 1992년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행사에서 공을 던지는 모습. 손용석 제공

선수와 버스 기사로 같은 직장에서 일하게 됐지만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손 코치가 당시 아버지가 몰던 1호 차를 피해 2호 차에 주로 탑승했기 때문이다. 손 코치가 “일부러 안 타고 피했다”고 말하자 손 씨는 “다른 버스였지만 숙소나 구장이나 거의 같이 있는 것과 다름없어서 상관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강병철 감독이나 코칭스태프가 버스에 오르며 한 마디씩 건넨 아들 칭찬이 장시간 운전대를 잡아야 할 손 씨의 힘을 북돋웠다.

	손경구 손용석 부자의 과거 모습. 롯데 자이언츠 제공

이날 두 사람은 ‘가정의 달’을 맞아 시구자로 선정됐다. 여느 경상도 남자처럼 두 사람도 집안에서는 별다른 교류가 없는 아버지와 아들이다. 손 코치가 “(아버지는)무뚝뚝하시죠”라고 말하자 손 씨가 “아니지. 자상하지”라고 반격했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간 후 손 씨가 “용돈은 안 줘도 비싼 건강검진을 시켜줘서 친구들한테 자랑한 적이 있다. 용돈은 안 줘도 속 깊은 아들이다. 정말 효자”라고 치켜세웠다. 얼굴이 붉어진 손 코치는 “겉으로는 표현 못 해도 늘 존경한다.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