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사를 거쳐 숲길을 오르다 보면 한순간 전망이 트이는 곳이 나온다. 바로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이라는 주목 군락지이다. 이곳에 서면 북쪽으로 정면에 방송 중계탑이 서 있는 함백산, 그 오른쪽으로 풍력발전단지가 있는 매봉산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 雪國 속 때묻지 않은 자연·낭만 가득 축제
- 태백산 등 백두대간 봉우리와 한국의 그랜드캐니언 통리협곡, 3억년 전 생성 용연동굴 반겨
- 아시아 최대 석탄박물관과 눈 조각·이글루 카페 있는 태백산 눈축제도 손님 맞이

강원도 태백은 부산에서는 '오지'와도 같은 곳이다. 자동차로 다섯 시간, 열차로는 일곱 시간 가까이 걸리니 교통수단으로 본 거리로는 서울보다 한층 멀다. 하지만 심리적 거리로 말하면 이웃처럼 가까운 곳이 태백이다. 부산에서 바다와 합치는 낙동강이 시작하는 곳이 태백 황지연못이란 건 누구나 아는 일이고, 삼국시대부터 하늘에 제를 올리던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높이 1567m로 남한의 산 가운데 일곱 번째로 높은 태백산은 눈 구경하기 어려운 부산 사람들에게는 겨울철 눈꽃 산행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눈 덮인 태백산을 품은 '겨울 태백'을 다녀왔다.

■ 주목과 어우러진 눈의 산

태백산은 사계절 자연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산이다. 정상 일대에는 다양한 고산식물이 있고 봄에는 만개한 산철쭉을, 여름이면 시원하게 하늘로 뻗은 울창한 수목과 찬 계곡물을, 가을에는 오색으로 물드는 단풍이 화려하다. 하지만 태백산의 진수는 역시 겨울철 흰 눈으로 뒤덮인 주목 군락과 일망무제 탁 트인 조망이라고 할 수 있다.

눈 덮인 태백산, 특히 주목과 함께하는 설화는 환상적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적설량이 많은 데다 기온이 낮아 겨우내 눈이 잘 녹지 않고 계속 쌓인다. 거세게 부는 바람이 눈을 날려 동화 속의 설경을 완성한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아직 태백산의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주진 않고 있다. 적설량이 많지 않은 데다 기온도 높아 띄엄띄엄 눈 내린 직후에 맞춰가야 환상적인 설화를 만날 수 있다. 그렇더라도 나무 위에 쌓인 눈만 녹았을 뿐 등산로를 비롯해 바닥에 쌓인 눈은 고스란히 남아 있어 부담 없이 산행할 수 있는 눈길이 펼쳐져 있다.

산행은 당골과 백단사, 유일사, 화방재 등에서 시작할 수 있는데 이 가운데 유일사로 올라 당골로 하산하는 길이 적당하다. 주목 군락지와 정상인 장군봉, 천제단, 단종비각, 망경사, 용정을 두루 둘러보는 길이다. 어느 코스를 잡든 크게 가파르거나 험한 곳이 없어 초보자나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가족 산행지이다. 다만 겨울에 갈 때는 아이젠과 따듯한 복장은 필수다.

유일사 매표소를 출발점으로 삼았다. 국립공원이 무료 개방된 것과 달리 도립공원인 태백산은 입장료를 징수한다. 주차장 전광판에 현재 기온이 -10도로 찍혀 있다. 매표소에서 정상까지는 4㎞. 유일사 쉼터까지 2.3㎞는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눈이 두껍게 쌓여 차량이 다니지 않는 만큼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오르는 내내 일자로 시원하게 뻗은 나무가 길을 에워싸고 있다. 정상인 장군봉까지 1㎞ 남짓 남은 지점에 다다르면 북쪽으로 전망이 트이는 곳이 나타난다. 바로 주목 군락지다. 여기선 화방재에서 만항재를 거쳐 함백산, 금대봉, 은대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굽이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함백산 옆으로는 매봉산 풍력발전단지가 보인다. 여기서 정상인 장군봉까지는 완만한 길을 따라 금방이다.

■ 천제단, 그리고 한국의 으뜸 명수

천제단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위), 장군봉과 천제단 일대에서는 360도 조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느긋하게 걸어도 두 시간 정도면 유일사 매표소에서 태백산 주봉인 장군봉에 닿는다. 여기서 남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천제단이 있다. 장군봉에도 규모는 좀 작지만 돌로 된 제단이 있다. 실제 천제단과 마찬가지로 '태백산 천제단'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천제단은 예로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원형 돌 제단으로 삼국사기에 이곳에서 왕이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신라가 오악 가운데 태백산을 북악으로 받들어 봄,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현재는 해마다 10월 3일 개천절에 태백시가 태백제를 개최하며 천제를 올린다.

장군봉과 천제단 일대에서는 360도 조망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주변에 북쪽으로 1573m의 함백산을 제외하면 크게 높은 산이 없어 경북 북부와 강원 일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태백산이 경북과 강원의 경계이자 태백시와 경북 봉화의 경계이기에 남쪽으로는 봉화 땅이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정선과 영월, 삼척이 잇달아 보인다.

망경사와 용정- 태백산 천제단에서 당골 방향으로 500m 정도만 내려오면 망경사가 나타난다. 망경사 입구에는 한국의 명수 100선 가운데 으뜸이라는 용정에서 차가운 물이 샘솟아 나온다.

천제단에서 남동쪽으로 능선을 타고 가면 문수봉을 거쳐 당골로 내려간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하산길로 바로 접어들면 곧 해발 1500m 높이에 단종을 모신 단종비각과 용정, 망경사가 있다. 신라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망경사 입구의 용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샘물이라 한다. 용정의 물은 개천절에 올리는 천제의 제수(祭水)로 쓰인다. 한국 명수(名水) 100선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물이다. 주변이 눈으로 뒤덮인 가운데서도 차가운 물이 쉼 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여기서부터 반재를 거쳐 계곡을 따라 느긋하게 눈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당골광장이다.

태백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석탄을 떠올렸다. 석탄이 추억 속으로 사라진 지금, 태백은 고원 휴양지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태백의 매력은 자연 그 자체에 있다. 태백산을 포함한 백두대간의 봉우리들, 대덕산 생태경관보전지역과 금대봉의 야생화 군락지가 매력을 뽐낸다. 낙동강과 한강, 오십천의 발원지가 태백에 있으며 이 세 강의 분수령이 되는 곳이 해발 920m의 삼수령이다. 여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질 자원이다. 우리나라 대표적인 석회암 지대인 만큼 지질 작용에 의해 생긴 명소들이 산재한다. 바로 석회암이 용해돼 생긴 용연동굴과 구문소다. 이웃 삼척 땅이지만 태백에서 가기가 더 편리한 통리협곡도 지질 시대의 유산이다.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용연동굴

용연동굴의 내부

태백엔 '가장 높은'이란 수식어가 붙는 곳이 여럿 있다. 삼수동에 있는 추전역은 해발 855m의 고지에 자리해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역이다. 싸리밭골 언덕에 있다고 해 '추전역'이라 이름 붙었다. 태백에서 정선으로 가는 414번 지방도는 구불구불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불린다. 이 도로가 지나는 곳이 해발 1330m의 만항재로 우리나라 포장도로 가운데 자동차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다.

태백의 또 하나 '가장 높은' 기록을 가진 곳이 용연동굴이다. 화전동에 있는 용연동굴은 동굴 입구가 백두대간 줄기인 금대봉 능선의 해발 920m 높이에 있어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동굴 가운데 가장 높은 곳이다. 3억 년 전에 생성이 시작돼 지금까지 진행 중인 곳으로 살아 있는 자연사의 증거라고 할 만하다. 길이 843m로 동굴 안에는 석회동굴의 특징인 석순과 종유석, 석주, 동굴진주, 동굴산호 등의 생성물이 가득하다.

동굴 입구에는 용연동굴 글자와 함께 '전국최고지대동굴-해발 920m'란 명판이 박혀 있다. 여기서부터 동굴 내부는 아래로 비스듬히 내려간다. 바깥 기온은 영하를 오르내리고 있지만 동굴 내부는 두꺼운 옷을 입고 들어가면 금방 땀이 맺힐 정도로 따뜻하다. 연중 영상 7~10도를 유지하는 데다 습도도 높다.

석회동굴인 용연동굴은 환상(環狀)으로 돌아보는 내내 허리를 숙이거나 오리걸음으로 지나가야 하는 낮고 좁은 곳이 적잖게 있다. 그 때문에 동굴 입구에 비치한 안전모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기기묘묘한 동굴 생성물에는 친절하게도 드라큐라성, 입맞춤, 저승사자, 엄마방 등의 이름표를 붙여두었다. 매표소 주차장에서 동굴 입구까지 1.1㎞ 구간은 걷거나 승용차를 이용해 올라가야 한다. 평소에는 무궤도열차인 용연열차를 운행하지만 겨울철이라 3월 말까지 운행을 중단한다. 태백의 또 다른 석회암 지형으로 구문소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417호인 구문소는 석회동굴이 땅 위로 드러난 구멍으로 황지의 물이 흘러가는 곳이기도 하다.

■중생대의 흔적 찾아가는 통리협곡

부산에서 태백으로 열차를 이용하려면 한 번에 가는 열차 편이 없다.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곳이 통리역이다. 태백에서 시내버스로 갈 수 있는 통리역 인근에는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퇴적암인 역암층이 단층작용과 이어진 침식으로 깎여 나가 만들어진 통리협곡이 있다. 통리협곡과 미인폭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이지만 '태백 통리'로 불릴 만큼 태백에서 가까운 곳이다.

해발 680m의 통리역에서 기찻길을 건너 맞은편으로 올라서면 38번 국도에서 갈라져 울진 방향으로 가는 427번 지방도가 나온다. 도로를 따라 1㎞ 정도 가면 '여래사'와 '미인폭포' 이정표를 만난다.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통리협곡의 붉은 암벽이 나타난다. 통리협곡은 형성 시기와 과정이 미국의 그랜드캐니언과 거의 같다고 해서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린다. '한국의…'란 수식어가 붙는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규모는 그랜드캐니언과 비교하기엔 민망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형인 만큼 일부러 가서 볼 가치는 충분하다.

오십천의 상류인 협곡의 길이는 10㎞ 정도이며 암벽의 높이는 최고 300m 정도로 수직의 암벽이 병풍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개발이 되지 않아 협곡 전체를 보기는 어렵다. 험준한 지형 탓에 쉽게 접근할 수 없어 미인폭포 주변의 붉은 암벽으로 전체의 모습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개발이 안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자체가 통리협곡의 때 묻지 않은 매력이기도 하다. 겨울엔 쌓인 눈이 얼어붙은 급경사길을 통해 여래사와 미인폭포까지 내려가기는 쉽지 않다. 나무들이 잎을 모두 떨구고 있는 덕분에 위쪽에서도 협곡의 전모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석탄과 광물의 모든 것 태백석탄박물관

태백석탄박물관 입구(위), 태백석탄박물관의 지하전시실

태백산 산행의 들머리이자 날머리이기도 한 당골광장에는 '아시아 최대의 석탄박물관'이라는 태백석탄박물관이 있다. 태백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곳이랄 수 있는 이곳에는 실내전시실 7개와 지하전시실 1개 야외전시실 등을 갖추고 있다. 석탄박물관이 별 볼 게 있으랴 하겠지만 뜻밖에 전시물은 알차다. 짧게는 1시간, 찬찬히 둘러보려면 두세 시간은 잡아야 한다. 태백산도립공원 입장권을 제시하면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실은 첫 번째 지질관에서 시작한다. 입구를 들어서면 자수정과 중생대 화석 등의 대표 전시물을 모아두었다. 여기부터 휘안석, 적철석 등 대부분 처음 들어보는 암석과 광물이 기기묘묘한 모습을 드러낸다. 지질관의 끝은 보석 광물로 마무리한다. 그다음부터는 석탄과 관련한 전시실이다. 석탄의 생성·발견관, 석탄의 채굴·이용관, 광산안전관, 광산정책관, 광산생활관, 태백지역관 등이 1층에서 3층으로 이어진다. 7전시실까지 관람하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지하전시실의 체험갱도로 내려갈 수 있다. 박물관은 암석 144점, 광물 795점, 화석 860점과 기계장비 1700여 점 등 모두 8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을 죽 둘러보면 우리나라 경제성장기의 주역이었던 광부들의 삶과 광산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전시실에는 다양한 영상장비와 특수효과를 이용한 전시물이 설치돼 있어 관람객의 흥미를 유발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중에는 불이 깜빡거리고 비상사태 발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와 현실감을 더해준다.

■눈축제 준비도 한창

황지 연못의 루미나리에

태백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눈축제다. 제19회 태백산 눈축제는 설이 지난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5일까지 10일간 열린다. 주 무대인 태백산도립공원 당골광장에는 제설기를 이용해 준비가 한창이다. 눈 조각을 만들기 위한 구조물에 눈을 채워 둔 상태다. 이곳 외에도 황지연못과 오투리조트 등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눈축제 기간 당골광장 일원에서는 대형 눈 조각 전시와 전국 대학생 눈 조각 전시, 유명 캐릭터·애니메이션 주인공 눈 조각 전시 등이 열린다. 또 이글루 카페와 은하수 터널, 눈 미끄럼틀, 스노우캔들, 스노우래프팅 같은 체험 행사도 다양하게 마련된다. 태백의 중심가인 황지동의 황지연못은 벌써 눈축제 분위기다. '별빛 페스티벌'이 열리는 연못 전체에 조명을 설치해 밤을 밝히고 있다.


# 태백의 맛

- 볶지 않고 육수에 끓인 태백 닭갈비 담백·시원

태백 닭갈비

때로 여행지는 맛으로 기억된다. 보고 즐긴 모든 것이 잊히더라도 맛있는 음식 한 가지로 그 여행이 기억되기도 한다. 태백에서 놓칠 수 없는 먹을거리로는 한우고기를 들 수 있다. 예전 태백이 탄광 경기로 '잘 나가던' 때 품질로 승부하던 고깃집 전통이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 말이 있다.

고산지대인 태백 지역에서 기르는 한우는 자연스럽게 산약초를 먹고 자라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담백하다. 한우 생고기를 취급하는 곳은 시내에 산재해 있다. 그 가운데 중심가인 자유시장 내에 시장실비 등 괜찮은 고깃집이 있다. 어디를 선택하든 육질 부드러운 고기를 맛볼 수 있다. 가격은 1인분(200g)에 2만5000원 정도로 비슷하다.

태백에 가면 또 하나 맛봐야 할 것은 태백 닭갈비다. 춘천 닭갈비는 원체 유명해 부산에서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하지만 태백 닭갈비는 태백 이외 지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태백 닭갈비는 부재료인 부추, 단호박, 배추 등 채소·나물과 떡, 사리 등을 쇠 판에 넣고 육수를 부어 끓인다. 춘천 닭갈비처럼 볶지 않기 때문에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