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오산 정상 인근 용장사지 동편 능선에 위치한 삼층석탑(보물 186호)의 뒤로 석양이 지고 있다.

경주는 두말할 필요가 없는 훌륭한 역사교육장입니다. 신라 시대의 수도 서라벌은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역사를 되짚어보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수십 번을 가고도 갈 때마다 다른, 새로움의 천년고도입니다.

이번에는 대릉원 첨성대 반월성 안압지 불국사 석굴암 등 관광지를 돌아다니는 패턴에서 벗어나 좀 더 색다른 경주여행에 도전했습니다. 경주 남산 곳곳에 흩어진 문화재를 찾아다니는 답사여행에 나선 것입니다.

경주 남산은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으로, 커다란 문화재의 보고입니다. 신라가 국교를 불교로 정한 이후 신성시돼 많은 불상과 탑이 건립되면서 남산은 이야깃거리와 볼거리로 가득 찬 곳이 되었습니다. 남산은 동서 너비 4㎞, 남북 길이 10㎞에 이르는 타원형을 하고 있으며, 고위산(해발 494m)과 금오산(468m) 두 봉우리로 이루어진 곳입니다. 거북이 한 마리가 서라벌 깊숙이 들어와 엎드린 형상을 하고 있으며 골이 깊고 능선이 다채로운, 낮지만 변화무쌍한 매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남산 석불 중 가장 완전한 형태의 불상인 보리사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보물 136호).

남산에 있는 문화유적을 보면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보고란 말을 실감할 것입니다. 현재 남산에는 왕릉 13기를 비롯해 불상 118체, 탑 96기, 석등 22기, 연화대 19점, 사지 147개소, 산성지 4개소 등 672점의 문화유적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들 문화유적 중 보물 13점, 사적 13개소, 중요민속자료 1개소 등 44점이 중요 문화유적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일부는 박물관으로 옮겨지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산행을 하며 직접 만날 수 있으며 만져볼 수도 있습니다.

남산 지킴이인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은 "남산의 가치는 남산 내 모든 문화재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조화롭고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습니다.

자녀와 함께 1박 2일 '남산 보물찾기' 답사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경주는 이제 부산에서 KTX로 3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입니다. 1박 2일 답사여행의 첫날은 삼릉에서 용장골로 산행하고, 둘째 날은 동남산 곳곳에 산재한 석불 석탑 왕릉 등을 찾아가는 코스를 추천합니다.



◇ 천년 숨결 간직한 석불·석탑…역사의 산길 오르다

- 신라~고려 초기 시대별 불상 만나 문화재 설명 들으며 6~7시간 소요
- 바위에 철필로 그린 듯한 선각육존불
- 남산서 두번째 큰 상선암 마애대좌불

- 용장사지 삼층석탑, 산 바위가 기단석
- 삼륜대좌불, 머리 없는 좌불 앉은 형상

경주남산연구소 김구석 소장의 설명을 들으며 경주 남산 곳곳에 흩어진 '보물' 찾기에 나섰다. 답사 첫날은 삼릉~용장골 코스다. 삼릉에서 출발해 금오산 정상에 오른 뒤 용장골로 하산하는 등산로에는 석불과 석탑이 많이 산재해 있다. 답사 둘째 날에 찾아간 동남산 일대에도 문화재들이 널려 발견하는 재미를 준다. 삼릉~용장골 코스는 시리즈 상편에서, 동남산 일대 문화재들은 하편에서 소개한다.

■신라 시대별 석불 모두 간직한 보고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에서 내려다본 가을 경주는 벌써 황금빛 벌판으로 바뀌었다. 오른쪽 지점이 경주 시내다.

삼릉을 먼저 답사한 뒤 삼릉계곡을 따라 금오산 정상을 거쳐 용장계곡 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다. 신라 시대부터 통일신라, 신라 말, 고려 초기까지 시대별로 신라 석불을 모두 만나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산행하면 6~7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행 시작 지점, 구불구불한 소나무 숲 사이에 위치한 3개의 거대한 봉분은 삼릉(사적 219호)이다.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상식 하나. 신라시대 왕릉 37개 중 확실한 것은 비석이 남아 있는 2개(무열왕릉과 흥덕왕릉) 밖이다. 나머지는 사료가 없어 모두 추정할 뿐이다. 그래서 신라 왕릉은 항상 진위 논쟁의 중심에 있다. 가령 원성왕릉도 1970년대까지는 문무왕릉이었다. 신라 왕릉에 이름이 붙여지기 시작한 때는 경주 이씨, 김씨, 박씨 족보 찾기가 한창이었던 조선 중기인 1730년대 무렵. 이 시기 전승된 것을 합쳐 28개 왕릉이 지정돼 지금까지 계승되고 있으며 이후 발굴과 명명을 통해 현재까지 37개의 왕릉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삼릉에서 500여 m쯤 가면 높이 1.6m, 무릎 너비 1.56m의 큰 석불좌상이 큰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삼릉계곡 석조여래좌상으로 머리 부분이 없고 무릎도 파괴돼 손 모양을 알 수 없다. 1964년 발견돼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화려한 옷 주름과 매듭으로 보아 신라 문화가 가장 번성한 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북쪽 산등성이를 쳐다보면 삼릉계곡 마애관세음보살입상(지방유형문화재 19호)이 있다. 광배(후광)는 따로 없으나 뒤쪽 바위가 광배 역할을 해주고 있다. 방금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사뿐히 내려온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산 아래 중생 굽어살피는 불상들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바위에 선각된 불상이 나온다. 선각육존불(지방유형문화재 21호)은 바위 면에 철필로 그림을 그린 듯한 느낌을 들게 한다. 음각은 찾아보기 힘든 신라시대 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매우 높다. 동쪽 바위 면에는 석가모니 삼존불, 서쪽 바위 면에는 아미타 삼존불이 그려져 현생과 내생을 드러낸다.

이 바위 위로 200m쯤 더 올라가면 거대한 절벽 바위가 나타나는데 여기에서도 선각된 불상인 마애여래좌상(지방유형문화재 159호)이 나온다. 몸체는 선각했는데 반해 얼굴은 깎아 내 돋을새김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적이다. 남산 문화재 중 가장 늦은 시기인 고려 초기 10세기 중엽 작품으로 추정된다.

약간 내리막길을 타고 내려오면 좁은 등산로에 석조여래좌상(보물 666호)이 눈에 띈다. 화려한 연화대좌 위에 앉은 이 좌상은 1960년대 파손돼 2009년 복원됐다. 노천불로 주위에 다른 건물이 들어선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지형상 나무를 쳐야 하는데 이렇게 자연을 훼손하는 일은 부처가 비바람을 맞더라도 없어야 한다는 당대의 생각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좌상의 10여 m 앞에는 석탑이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삼릉계 삼층석탑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져 소장되고 있다.

계속 금오산 정상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거대한 바위에 양각된 높이 6m의 좌상이 나온다. 상선암 마애대좌불(지방유형문화재 158호)로 남산에서는 두 번째로 큰 불상이며 통일신라 후기 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등산로를 타고 좀 더 올라가 상선암 마애대좌불을 내려다보면 마치 불상이 바위를 뚫고 나와 기도를 하는 중생들을 내려다보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200m 높이의 석탑을 보셨나요

	용장사지 삼륜대좌불

전망이 좋아 서라벌 벌판 전체가 보이는 금송정터와 그 옆 신선들이 내려와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를 거쳐 금오산 정상(해발 468m)에 이른다. 정상에서 잠시 쉰 뒤 하산하는 길에 거대한 석불을 안치했을 것으로 보이는 삼화령 대연화대를 거쳐 용장사지 삼층석탑(보물 186호)에 다다른다. 산 중턱에 우뚝 솟은 삼층석탑은 장관이다. 용장사지 동편 능선 위에 위치한 이 석탑은 8세기 중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며 3층 옥개석까지 남아 있는데 높이가 4.5m 정도다. 하지만 해발 200여 m에 위치한 산 바위를 기단석으로 하고 있어 석탑의 총 높이는 200여 m라고 달리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석탑이라는 것이다. 탑 기단석을 산 바위로 삼아 남산과 조화를 꾀한 신라인의 생각을 잘 표현하고 있다.

조금 더 하산하면 바위 벽면에 얇게 돋을새김된 용장사지 마애여래좌상(보물 913호)을 발견할 수 있다. 역시 8세기 중엽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석불상 앞에는 용장사지 삼륜대좌불(보물 187호)이 있다. 삼륜의 대좌에 머리가 없는 좌불이 얹혀 있는 형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귀한 사료다. 대좌의 높이는 3.15m, 불상의 높이는 1.41m로 총 높이는 4.56m에 달한다.

용장사지는 조선 초기 학자 김시습이 설잠 스님으로 이곳에 오래 머물면서 금오신화를 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절터 축대와 기와 조각만이 발견되고 있다. 이곳에 닿으니 김시습이 남긴 시 '용장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용장골 골 깊어/오는 사람 볼 수 없네/가는 비에 신우대는 여기저기 피어나고/비낀 바람은 들매화를 곱게 흔드네/작은 창가엔 사슴 함께 잠들었어라/낡은 의자엔 먼지만 재처럼 쌓였는데 깰 줄을 모르는구나/억새처마 밑에서 들에는 꽃들이 지고 또 피는데'.



하산길 탑재와 석등대석 지점에서 산 꼭대기를 올려다보면 용장사지 삼층석탑이 까마득히 보인다. 탑 하층 기단석과 옥개석, 석등대석만 남아 있는 이곳은 밤에 산을 찾는 사람을 위한 일종의 등대였다. 석등 아래서 저 멀리 삼층석탑을 보며 기도를 했을 선인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 답사여행 가이드

- 뜨끈한 한옥 황토방서 여행에 지친 몸 풀어요
- 야선미술관 한옥민박 특별한 경험
- 경주남산硏 주말에 무료 유적답사

■경주남산연구소

	야선미술관

사단법인 경주남산연구소는 남산의 역사적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알릴 목적으로 만들어진 민간단체다. 1984년 발족된 남산사랑모임과 1999년 설립된 남산연구소가 통합한 단체로 문화해설을 통해 남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남산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경주남산연구소는 매 주말과 공휴일에 무료로 남산유적답사를 실시하고 있다. 또 매달 보름 전후 토요일에는 남산달빛기행도 무료로 시행한다. 오후 7시30분 출발하는 코스로 달빛을 받으며 남산 곳곳의 석불과 석탑을 둘러본다. 전문가들이 안내하는 일부 프로그램은 유료로 진행된다. 답사여행 문의 및 신청은 경주남산연구소(www.kjnamsan.org)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054)777-7142

■묵을 곳과 먹을 곳

	한정식집 수리뫼의 음식

보문단지를 중심으로 숙박업소가 많지만 한옥민박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야선미술관(010-9215-1618)이 적당하다. 한옥 4채를 미술관과 숙소로 꾸민 민박집으로 뜨끈한 황토방은 여행에 지친 몸을 가볍게 해준다. 이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식. 무 맨드라미 등 차는 물론 주인장이 손수 수확한 채소로 만들어주는 아침밥을 먹으면 마치 힐링되는 기분이다.

경주에는 유독 손두부 음식점이 많다. 직접 제조한 두부로 만든 두부전골 두부김치 등이 주 메뉴다. 서남산 삼릉 입구에 위치한 삼미정(054-745-8761)은 면 손두부 요리로 유명하다. 두부와 버섯 등 각종 채소 당면 등이 들어간 두부전골은 담백하면서도 얼큰한 맛을 내고 돼지고기 수육, 파전, 직접 담근 동동주도 이 집의 주요 메뉴다. 인공조미료를 넣지 않는다는 것이 이곳의 원칙이다. 고두반(054-748-7489) 역시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식 두부요리를 선보인다. 장작 가마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가 유명하다. 다시마 가루가 들어간 손두부는 쫄깃하니 씹는 맛이 일품이다. 소나무정원(054-746-0020)에서는 연잎밥 등 깔끔하고 담백한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

수리뫼(054-748-2507)는 정통 궁중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한정식집이다. 고 황혜성 선생(중요무형문화재 38호 2대 기능보유자)으로부터 기능을 전수받은 박미숙 대표가 한국 정통음식과 궁중요리를 발굴, 재현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다. 용산서원(시도기념물 88호)에 위치해 음식이라는 문화재를 접하는 느낌이다.

	왼쪽부터 삼릉계곡 마애관세음보살입상, 석조여래좌상, 상선암 마애대좌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