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낮 12시 관광객들이 부산 영도대교 도개를 관람하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였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 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를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웃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춰보자


지난 10일 낮 12시 부산 영도대교 스피커에서 가수 현인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가 울려 퍼졌다. 수백 명의 관광객은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개 현장을 지켜봤다. "와~ 올라간다." 누군가의 외침에 관광객들은 일제히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인천에서 온 여행자는 술을 꺼내 들었다. "이런 재미난 일에 술이 빠지면 섭섭하지." 오남열(65) 씨가 병맥주를 따서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오 씨는 "우리나라 유일의 도개다리라고 해서 구경하러 왔다"면서 "이렇게 복원을 했다는 것 자체가 부산의 힘이다"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지난해 11월 재개통한 영도대교가 평일 500~700여 명, 주말 1000여 명의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관광명소로 부상했다.

	영도경찰서 옆에 위치한 가수 현인의 노래비. 현인은 영도다리를 배경으로 한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로 유명하다.

지금 부산에서 가장 '핫'한 곳인 영도다리는 영욕의 한국 근현대사를 대변한다. 영도다리는 일제 강점기인 1934년 세워졌다. 부산 영도구와 중구를 잇는 한국 최초의 연륙교이자 중대형 선박의 통행을 위해 한쪽 다리만 들어 올리는(일엽식) 국내 유일의 도개교였다. 영도다리는 최초와 유일이라는 기록을 등에 업고 부산을 대표하는 명물이 됐다.

영도다리는 한국전쟁을 거치며 더 유명해졌다. 현인의 노래처럼 '일사(1·4) 후퇴' 때 내려온 피란민에게 영도다리는 '만남의 광장'이었다. 남으로 휩쓸려 내려온 피란민들은 영도 등 원도심에 터를 잡고 국제시장에서 물건을 팔거나 항만에서 노역하며 고향으로 돌아갈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영도다리는 전쟁이 끝나고 도시가 발전하면서 점차 퇴물 신세가 됐다. 교통량 급증으로 1966년 도개가 중단됐고, 1980년 영도구와 중구를 잇는 부산대교가 개통하면서 빛이 바랬다.

급기야 영도다리는 2003년 안전진단에서 위험 등급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부산시의 철거 방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복원을 염원했고, 영도다리는 굳세게 되살아났다. 화려하게 부활한 영도다리는 탄생 80년 만에 부산의 명소라는 타이틀을 다시 한 번 거머쥐었다.

영도다리 도개를 기념해 국제신문과 부산관광공사가 공동으로 영도대교 주변 관광코스를 만들었다. 영도다리 흰여울문화마을 등 영도지역을 중심으로 영도와 중구 일대 가볼 만한 관광지와 맛집을 소개한다.


# 가난·피란에 주저 앉았었지…이젠 굳세어진 그 곳

부산 영도다리 도개 현장 봤다면 영도로 넘어가 보자. 볼거리는 영도다리에 그치지 않는다. 감상하고 체험할 거리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한국의 산토리니'를 꿈꾸는 영도구 영선동 흰여울문화마을과 100년 역사의 수리조선소길, 부산어묵의 역사를 체험하고 어묵도 맛볼 수 있는 부산어묵역사관 등이 영도 추천 관광코스다. 해가 지면 중구 부평동으로 넘어와 야시장을 보는 재미도 만끽할 수 있다.

①흰여울문화마을

	부산 영도구 영선동 흰여울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였다. 극중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국밥집 주인(김영애)의 집 계단에 걸터 앉아 그를 기다리는 장면을 한 관광객이 재연하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한 달째 실종된 아들이 구치소에 있다는 연락을 받고 가게 단골손님인 변호사에게 아들 접견을 부탁하는 국밥집 주인. 이를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해 저녁에 국밥집 주인의 집까지 찾아가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변호사. 해 질 녘 바다를 바라보는 변호사의 하염없는 기다림은 아들을 찾아 헤매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다림과 겹쳐진다.

관객 1000만 명 돌파를 앞둔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이다. 극중 주인공인 송우석 변호사(송강호)가 국밥집 주인(김영애)을 기다리던 그곳이 바로 영도 흰여울문화마을이다.

영도 해변가 산복도로인 흰여울문화마을은 '변호인'뿐 아니라 '범죄와의 전쟁' 등 여러 영화의 촬영장소로 사용되면서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다. 지난 10일 평일인데도 사진을 찍으러 온 출사객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마을 아래 해변에는 절영 산책로가 이어지고, 앞바다는 주차를 한 배(배 주차장인 모박지)들이 장관을 이룬다. 이 마을에서 바라본 남항대교와 송도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마을 명칭인 '흰여울'은 봉래산 기슭에서 여러 갈래의 물줄기가 바다로 굽이쳐 내리는 모습이 흰눈이 내리는 듯 빠르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 마을은 2011년 '산복도로 르네상스' 대상지로 선정돼 마을 재생사업이 진행됐다. 벽화가 그려지고, 폐가는 예술작업장으로 변모했다. 목공예 유화 도예 사진 등 여러 장르의 작가들이 새로 꾸며진 흰여울문화마을에 입주해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곳 입주한 '송천아뜨리에' 윤진우(59) 작가는 "부산에서 가장 낙후됐다는 영도, 영도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동네가 흰여울마을이다"며 "개발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오히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곳일 수 있다"고 자랑했다.

흰여울문화마을은 '한국의 산토리니' 프로젝트가 예정돼 있다. "건물 색상을 통일하는 등 마을 꾸미기 사업이 이뤄지면 감천문화마을과는 다른 매력의 산복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곳 주민들의 이야기다.

②100년 수리조선소길 10리

'피란의 역사' '가난의 역사'를 머금은 영도는 시간을 거슬러 '수탈의 근대사'도 기억한다. 항구를 낀 영도는 일제시대 일본인들에게 '황금의 땅'이었다. 일본인들이 눈독을 들인 것은 조선산업. 한반도의 물자는 철도와 배를 통해 일본으로 속속 뺏겼다. 일본과 조선을 오가는 배가 집결하는 영도는 조선소를 세우기에 가장 적합한 요충지였다.

1887년 영도 대평동 대풍포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목선 조선소인 다나카조선소가 세워졌다. 이 조선소 건립 이후 이 일대에 크고작은 조선소와 수리조선소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수리조선소길이 만들어졌다. 다나카조선소 건립 50년 뒤인 1937년에 국내 최초의 철강 조선소인 조선중공업(현 한진중공업)이 영도에 세워졌으니, 영도는 우리나라 조선산업의 시작점이자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127년 역사의 수리조선소길 4㎞에는 아직도 선박정비 부품업체들이 가득하다. 배 만드는 업체는 사라졌지만, 배 정비업체와 선박부품업체들은 즐비하다. 다나카조선소가 있던 자리에는 현재 에스앤케이조선이 들어서 선박수리를 계속하고 있다. 매케한 쇠냄새와 용접 불꽃이 수리조선소길의 치열한 산업활동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영도문화원 김두진 사무국장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영도 수리조선소길의 127년 역사를 되새길 수 있는 문화지도를 제작 중이다"며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에게는 '깡깡이' 일(배에 매달려 녹을 깎아내는 작업)을 하던 곳으로, 일반 여행자나 관광객들에게는 국내 조선산업의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산업관광코스로도 멋진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③부산어묵역사관

부산대교를 지나 영도로 넘어온 직후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오면 부산삼진어묵체험·전시관(051-416-5468)이 나온다. 부산 어묵의 대표 주자인 삼진어묵이 만든 430㎡(약 130평) 규모의 어묵역사관이다. 삼진어묵 전시관 입구에 부착된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어묵 제조 가공소'라는 부산시 기네스판이 이곳의 역사를 설명한다. 삼진어묵은 1953년 이곳 봉래시장에서 어묵 제조를 시작한 이래 60년 넘게 3대째 어묵을 생산하고 있는 업체다. 2011년 부산 사하구 장림공단에 제2공장을 신설하면서 영도 공장은 전시관으로 바뀌었다.

박종수(61) 삼진어묵 사장은 "부친이 일본 사람에게 어묵 만드는 기술을 배운 뒤 이곳 봉래시장 입구 판잣집을 빌려 어묵을 처음 만들어 팔았다"며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부산어묵의 역사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그는 "위생적인 어묵 제조 과정을 눈으로 확인하고 구매하며, 어묵을 직접 만들어 볼 수도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부산어묵역사관 1층은 '오픈 키친' 형태로 돼 있어 어묵 만드는 과정을 직접 확인하고 어묵을 구입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실내를 고급 빵집처럼 꾸며놓았다는 점이다. 여느 베이커리 가게처럼 쟁반에 깔개를 깔고 집게를 들어 다양한 어묵을 빵처럼 쇼핑할 수 있다. 한켠에는 어묵카페도 있다. 어묵크로켓, 어묵탕, 어묵빈대떡 등 다양한 어묵요리를 시식할 수 있다. 2층 체험관은 다음 달 개장할 예정이다. 이곳 영상체험관에서는 삼진어묵 등 부산어묵의 역사를 영상물로 배울 수 있다. 바로 옆 주방에서는 직접 반죽한 어묵을 튀기거나 구워 만드는 체험을 하게 된다.

④부평동 야시장

부평깡통야시장은 지난해 10월 부산 중구 부평동에 개장한 전국 최초의 상설 야시장이다. 전통시장 시설현대화 사업으로 설치한 아케이드 110m 구간에 조성됐다. 지난해 안전행정부의 전통시장 야시장 시범지역으로 뽑히면서 만들어졌다.

매일 오후 6시 문을 열어 자정까지 관광객에게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한다. 벌써부터 전국 각지의 관광객이 몰려올 만큼 입소문을 타고 있다. 야시장 부스에서는 잡화류 신발 등 물품을 팔고, 각종 먹을거리도 선보인다.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곳은 이색적인 외국 먹을거리. 특히 터키 케밥과 베트남식 튀김만두 요리인 '짜요'가 인기를 끌고 있다. 부스 거리 양 옆으로는 기존 매장이 저녁에도 문을 열어놔 먹을거리 쇼핑도 할 수 있다.

	1박 2일간 영도다리 주변 부산 관광을 원하는 타 지역 여행객들을 위한 코스. 첫 날은 영도다리 주변을 돌아보고, 둘째 날은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이나 산복도로를 체험할 수 있는 원도심 이바구길 등 코스가 추천된다. 사진=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