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본지 홈페이지(www.kookje.co.kr)에 4회에 걸쳐 연재됐던 '헬조선에서 엄마로 살아가기'가 '헬조선에서 엄마 노릇하기'라는 제목으로 지면에 게재된다. 본지 12년차 기자이자 2010년생 아들, 2014년생 딸을 키우는 엄마가 겪은 '맨땅에 헤딩'하는 '순수 리얼' 육아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선 이야기는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이 손주를 돌보는 것을 일컬어 '황혼 육아'라고 하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집이 바로 이 황혼 육아의 결정판이다. 양쪽 조부모가 모두 육아에 동원(?) 되셨으니 말 다했다.

큰 아이는 기자의 육아휴직이 끝났던 첫돌부터 일곱 살이 된 지금까지 외할머니 손에서 크고 있다. 둘째는 첫돌부터 10개월가량 김해에 사시는 친할머니 손에서 자랐고, 어린이집에 다니고부터는 오빠와 함께 외할머니와 생활하고 있다.

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너무도 당연히 엄마보다 할머니를 좋아한다. 큰애는 다섯 살 무렵 '싸나이' 타령을 시작하고 나서는 '아빠바라기'가 되긴 했지만 지금도 어쨌든 엄마보다는 할머니가 우선이다.

둘째는 엄마 껌딱지였는데, 최근에 말 좀 알아듣는다고 뭐라 했더니 슬그머니 변심했다. 사실 기자는 한 번도 겨우 참다 화를 내지만 할머니는 네댓 번은 참고 타이르니 그걸 아이들이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들의 외할머니이자 기자의 친정엄마가 폭탄선언을 하셨다. "내 진짜 집 나가고 싶다. 사는 낙도 없고 몸도 아프고 너희 없는 데로 멀리 가고 싶다."

당신의 집에서 첫째를 봐주시다가 둘째까지 같이 돌보게 되면서 우리 집으로 거처를 옮긴 지 서너 달쯤 지났을 때인 것 같다. 아이들 아빠도 다른 지방에 나가 있는 터라 등원 준비부터 하원 후 씻기기, 밥 먹이기까지 각종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오셨다. 더군다나 그 기간 두 아이가 연달아 아파 병원생활도 몇 번 했다. 그러다 결국은 못하겠다며 두 손 두 발 다 드신 거다.

그때야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아이고, 내가 정말 잘못했구나' 반성도 많이 했다. 그리고 한참 늦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부담을 덜어 드리고자 아침 등원도, 청소도, 아이들 씻기는 것도 내가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다. 당장 아침에 두 꼬마를 깨워서 먹이고 입혀 시간 맞춰 나가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들 보냈다고 끝도 아니다. 그때부터 출근 전까진 신들린 듯한 몸놀림으로 청소를 해야 한다. 퇴근 후엔 씻기고 놀아주고 남은 집안일을 하고, 안 자겠다는 아이들 어르고 협박해가며 재우고 나면 나도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먹을거리 걱정 안 하는 것만 해도 아주 감사한 일이었다. 별짓을 다 해도 꿈쩍도 않던 몸무게가 이렇게 며칠만 하고 나니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걸 떠맡은 친정엄마께서 안 힘든 게 이상한 거였다.

얼마 전 택시를 탔는데 부모님 연배쯤 되는 택시기사님이 기자가 타자마자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부인이 외동딸이 낳은 손녀를 돌보고 있는데, 너무 섭섭하다는 거다. 한 번은 딸 내외가 일 있다고 거짓말하고선 몰래 영화를 보러 갔다가 표를 제대로 버리지 않는 바람에 부인이 이를 발견하곤 노발대발한 적이 있다고 했다. 키워 줘도 고마운 줄도 모른다고 열변을 토하셨다. 아마 딸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기자가 타자 참았던 화가 터져 나온 것일 테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도착지까지 가는 내내 나를 혼내는 것 같아 좌불안석이었다.

많은 맞벌이 가정이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기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나도 편하고, 내 자식도 안전하기 때문이다. 돌보미에게 맡기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시간도, 마음도 자유롭지 못하다. '아이를 때리지는 않을까' '저녁 약속 있는데 어떡하지?' 등등 매일 끝없이 이어지는 고민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래서 힘들 줄 '알면서도 모른 척' 믿을 수 있는 조부모에게 육아를 떠안기게 된다.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2013년 내놓은 '부산지역 맞벌이가정의 조부모 손자녀 양육 실태 및 욕구조사'를 보면 손자녀를 돌보는 이유로 '남에게 맡기기 불안해서'가 1위로 나타났다. '자녀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서' '자녀가 편히 직장생활 하라고'가 뒤를 이었다. 결국, 조부모도 자식과 손주를 위해 자신의 희생을 택한 것이다.

폭탄선언의 후폭풍이 지나간 지금, 아이들 외할머니는 다시 평소대로 돌아오셨다. 아침 등원은 나의 몫이지만 아이들 씻기기, 놀아주기, 먹을거리 챙겨주시는 건 여전히 책임지고 계신다. '같은 실수는 안 해야지' 매일 다짐하지만, 오늘도 아이들 병원 데려가는 문제로 친정엄마와 짜증 섞인 목소리로 통화하고야 말았다. 엄마가 된 지 벌써 7년째이지만 아직 철들려면 먼 것 같다.

songya@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