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송이 기자의 헬조선에서 엄마 노릇하기 <7> '나'를 찾아서

월화수목금금금…엄마도 때론 휴가가 필요하다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6-06-22 19:17:42
| 본지 19면

얼마 전 며칠 휴가를 냈다.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친정엄마가 큰아이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가서 어린이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둘째를 돌볼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친김에 미뤄뒀던 대청소를 하던 중 점심 먹을 시간이 됐다. 챙길 아이들도 없으니 라면 하나를 끓여 TV 앞에 놓고 앉았다. 마침 영화 채널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미드를 방영하고 있었다. 라면을 먹으며 한참 TV를 보는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얼마 만에 느껴보는 여유인가!'

사실 그랬다. 평일엔 밤 10시쯤 아이들을 재워야 해 드라마를 못 본 지 오래됐다. 마지막으로 드라마를 본 것이 올해 초인데, 이때도 "무슨 애 엄마가 드라마 챙겨본다고 야단이냐"는 친정엄마의 핀잔을 들어가며 겨우 본방을 사수했더랬다. 또 식사시간에는 늘 아이들을 먹여야 하다 보니 정작 내 밥은 급하게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집에 앉아, 그것도 평일 낮에 여유롭게 점심을 먹고 있다니. 그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고급 휴양지가 부럽지 않았다. 집에 앉아 라면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워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가 되고 나서, 특히 아이가 둘이 되고 나선 '내 생활'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평일에는 회사에 매여 있어야 하고, 주말에는 아이들과 집안일에 매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주말엔 아침 먹고 정리하고 청소하고 돌아서면 또 점심을 먹어야 하고, 정리 후 아이들과 좀 놀고 나면 벌써 해가 지고 있다. 나들이를 나가는 날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종일 밖에서 아이들 쫓아다니다 집에 와서 쓰러진다.

매번 주말이 여기서 크게 달라지지 않다 보니 사실 매주가 '월화수목금금금' 같다. 주말은 쉬는 날이라지만 불행하게도 워킹맘에게 있어 주말은 일주일 중 가장 바쁜 날이다. 이러니 월요병이 심각한 건 말할 것도 없다. 제발 주말만큼은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눈을 뜰 수만 있다면, 낮잠을 잘 수만 있다면 싶은데 이것도 아직 사치인 날이 더 많다.

이러니 문화생활은 언감생심이다. 가장 최근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도둑들'인데, 2012년 개봉했으니 벌써 4년째 영화관 구경을 못 했다. 요새 IP TV가 일반화돼 집에서라도 보겠다고 마음 먹지만, 아이들이 잘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아이들 재운다고 누웠다가 내가 먼저 잠들어 버릴 때가 잦다. 친구들을 여유롭게 만난 건 또 언제인지. 전업주부 친구는 평일이 편하고, 워킹맘 친구는 주말이 조금 더 편해 서로 시간 맞추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몇 년 이렇게 살다 보니 비슷한 또래를 키우는 친구들과 전화통화라도 할라치면 "애들 좀 떼놓고 어디 가고 싶다"는 신세 한탄이 대화의 절반이 넘는다. 실제로 워킹맘 친구 중엔 아무도 모르게 회사에 휴가를 내고 영화를 보거나 쇼핑을 하기도 한다. 그렇게라도 '누구 엄마'가 아닌 '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절박한 거다. 나 역시 어쩌다 한 번 시간이 나면 어떻게든 많은 일을 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