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해문학상 수상작 '밤의 눈' 등
- 보도연맹 사건 정면으로 다룬
- 여러 작품 써낸 부산 대표 소설가
- 5년 만에 새 소설집으로 돌아와
- 노년 접어든 작가시선 녹아들어

부산 문단의 중진 조갑상(사진) 작가가 소설집 '병산읍지 편찬약사'(창비)를 펴냈다. 2012년 장편소설 '밤의 눈' 이후 5년 만이다.

조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그늘인 '보도연맹 사건'을 끈질기게 소설에 끌어들이고 있다. 보도연맹 사건은 한국전쟁 당시 정부가 보도연맹에 가입한 이를 좌익으로 몰아 죽인 민간인 학살 사건이다. 조 작가는 보도연맹 사건이 수면 위로 떠 오른 1990년대부터 이를 다룬 단편소설을 썼고, 2013년 만해문학상 수상작인 '밤의 눈'에서 보도연맹을 정면으로 다뤄 반향을 일으켰다.

이번 소설집에도 보도연맹 사건을 소재로 한 단편소설이 여럿 포함됐다. 표제작 '병산읍지 편찬약사'는 병산 지역의 읍지 편찬 과정을 통해 보도연맹 사건을 다룬다. 읍지편찬위원회로부터 읍지의 역사 부분 편찬을 의뢰받은 주인공이 과거 보도연맹 사건을 겪은 그 지역의 역사를 부각시키지만 편찬위원회는 '좌빨 글을 싣는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이 부분을 축소해달라고 요구한다. 조 작가는 주인공과 편찬위원회가 보도연맹 서술 부분을 스스로 검열하고 고치는 과정을 또 하나의 기록처럼 그리며, 역사를 올바르게 남겨야 할 역사학자조차 현실에 타협하는 모습에서 보도연맹 사건이 어떻게 축소되었는지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이 소설을 쓴 계기는 따로 있다. 그는 "지난해 정부가 주도한 국정 교과서 편찬 과정을 보며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고 마음이 답답했다. 소설 속 편찬위원들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기득권이 역사를 어떻게 왜곡할 수 있는지 환기하고 싶었다"면서 "이 과정을 대화로만 드러내면 와닿지 않을 것 같아 병산읍지 편찬약사를 온전히 쓴 부분, 주인공이 수정을 고민한 부분, 주인공이 편찬을 포기하고 다른 이가 다시 쓴 부분을 일일이 대조해서 실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도연맹은 작가로서 다뤄야 한단 생각이 굳건하다. 어릴 적 어른들이 보도연맹 사건을 쑥덕이는 것을 들어 알고 있었고, 작가가 된 이후 이것을 소설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남북 분단 상황이 굉장히 불편하고 소모적인 현실 아닌가. 보도연맹 사건은 분단이 빚어낸 비극이고, 분단의 불편함을 환기하기 위한 테마이다"고 덧붙였다.

소설집에 실린 '해후' '물구나무서는 아이' 등도 보도연맹 사건처럼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렸다면, '봄, 그리고 여름까지' '목구멍 너머' '위로' 등은 요양병원, 노인정, 자녀 문제로 고민하는 기성세대를 그렸다. 노년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머문 소재다. 그는 "부모 형제 친구들이 나이가 드니 자연스럽게 노인을 볼 기회가 자주 생겼고 60~70대를 주인공으로 쓰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그는 소설집을 낸 소감으로 "작가가 책 내는 것은 해야 할 일인데 한번 시기를 놓치면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 1년에 꾸준히 단편소설 1~2편씩 냈던 것을 엮어 5년 만에 새 책을 낼 수 있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또 "대학에서 정년퇴직한 후 그동안 조사한 자료들을 뒤적여야지 마음먹었는데 당최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올해 5월 대선까지 일어난 대변혁 앞에서 심신이 크게 요동치는 귀한 경험을 했다. 내 글쓰기가 그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나름의 궁리도 해봐야겠다"고 덧붙였다.

조 소설가는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등을 펴냈다. 현재 경성대 국문학과 명예 교수이며 부산소설가협회장, 부산작가회의 회장 등을 지냈고, 요산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받았다.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