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 다른 페이지를 끼웠다뺐다
- 막대로 인형 움직이는 극장식 책
- 리본을 풀어 360도 펼쳐 묶으면
- 페이퍼 아트가 되는 캐러셀 북
- 정교한 남성 모델 인체해부도 등
- 종이가 주는 무궁무진한 매력에
- 아이뿐 아니라 중장년층도 빠져

그림책이나 페이지를 펼치면 종이 공예 같은 도안이 튀어나오는 팝업북은 어린이용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연령대와 관계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애정을 드러내는 게 미덕일 때는 이런 구분이 무의미하다. 부산 금정구 부산대 앞 패션거리의 옷가게가 즐비한 곳에서 개성 있는 책방 ‘헤이즐’을 발견했다. 외서만 취급하는데 그중에서도 팝업북과 아트북에 특화된 공간이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을 꺼내 평면이 입체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 탄성부터 나온다. 헤이즐에선 고객이 원하면 책을 열어서 보여주기 때문에 비닐 포장으로 팝업북 내부를 볼 수 없는 다른 서점과는 궤를 달리한다. 책이 상할까 걱정하기보다는 책의 아름다움을 고객과 나눌 준비가 된 셈이다.

	책을 펼쳐 돌려 묶으면 페이퍼 아트 작품이 되는 캐러셀북. 평면의 책이 입체가 되는 마술을 보여준다.

아주 인상적이었던 책 중 하나는 책 자체가 하나의 연극무대처럼 만들어진 것이었다. 극장식 책이라고 불리는데 책 자체가 스크린 혹은 무대가 된다. 장면 전환은 배경이 다른 페이지를 슬롯처럼 끼웠다 뺐다 하면서 할 수 있다. 무대 뒤로 공간이 있어서 인물이 그려진 종이 막대를 양 옆에서 찔러 넣어 움직이면 마치 인형극의 인형처럼 쓸 수 있다. 장면마다 어떤 등장인물로 채울지, 어떤 배경으로 이야기를 진행할지 모두가 독자의 선택이다. 과연 이것을 책이라 부를지, 종이로 만든 인형극 세트라고 불러야 할지 어려웠다. 김현숙 공동대표는 “해외에서 출간되는 팝업북이나 이런 극장식 책을 접하면 전통적인 의미의 책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 자체가 장난감이 되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극장이 되는 셈”이라며 웃었다.

팝업북의 정교함도 상상 이상이었다.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를 주제로 만들어진 팝업북은 종이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말 그대로 자동차가 로봇으로 변신해 눈앞에 튀어나왔다. 3D로도 모자라 4D 영화까지 제작되는 이때 종이가 가지는 매력이 이렇게 무궁한지 깜짝 놀라게 된다. 배선한 공동대표는 “팝업북 자체가 펼치면 쑥 튀어나는 책을 일컫는다. 아이들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환해질 때 얼마나 보기 좋은지 모른다”며 즐거워했다. 배 공동대표는 팝업북을 다룰 때 꼭 양손을 이용해 펼치고 접을 때도 주의를 기울일 것을 부탁했다. 종이의 특성상 본래의 형태대로 접히지 않으면 망가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의 속이 페이지로 꽉 차 있는 것이 아니라 펼치면 입체로 변형되는 도형이 들어있으므로 책의 기둥 부분을 너무 꽉 잡으면 찢어질 수도 있다.

	책 자체가 극장 혹은 연극무대가 되는 극장식 책은 스토리 전개의 무한한 변형이 가능하다.

캐러셀 북 또한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책에 붙어 있는 리본을 풀고 양쪽으로 완전히 펼쳐 돌려 표지의 양 끝이 서로 만나도록 한 뒤 다시 끈을 묶어 고정한다. 그러면 책 자체가 하나의 페이퍼 아트가 된다. ‘빅토리아 인형의 집’이라는 책이었는데 그 책은 지금 기자의 책장에 고이 꽂혀 있다. 집 내부의 섬세한 묘사에 반해 도저히 지르지 않고는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거기다 종이 인형 놀이도 할 수 있게 인물도 몇 명이나 들어 있다. 서점 벽 한쪽에는 인체 해부도가 세워져 있다. 이것도 팝업북의 형태로 180㎝ 남성을 모델로 삼아 반쪽은 근육과 혈관 뼈, 반쪽은 내장의 모양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의학이나 신체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눈이 갈 정도로 정교했다. 헤이즐은 영어로 된 책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의 그림책이나 아트북을 갖추고 있다. 배 공동대표는 “아름다운 그림이 있는 책들이 언어장벽을 낮춰주기도 한다. 그림이 예뻐서 보다 보면 언어를 몰라도 책을 소장하고 싶고 곁에 두고 자꾸 보게 되는 것”이라며 읽는 용도 외에도 책이 가지는 다른 힘을 알려줬다.

	높은 탑에 갇힌 라푼젤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것을 표현한 팝업북.

팝업북이라면 책 페이지를 열 때 예쁜 그림이 솟아 나오는 정도로만 알았다면 조금 새로운 세계를 엿본 기분이 된다. 김 공동대표는 “헤이즐이 취향의 통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각자의 취향을 가진 이들이 들러서 자신의 관심사를 다룬 책을 만나는 공간이 되는 거다. 김 대표는 “단골 중에 중후한 50대 남성이 있다. 이 분은 처음 오셨을 때는 여러 책을 둘러보다가 이제는 요정이 나오는 팝업북이나 그림책에만 집중한다. 자신이 귀엽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라고 했다. 김 대표는 “현재 5000권 정도를 갖추고 있다. 안 팔리면 내 서가로 데려가야지 하는 책도 많아 책방에 있는 시간이 즐겁다”며 예쁜 책 사랑을 드러냈다.

글·사진=최영지 기자 jador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