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위험한 장난 같은/블록담을 맹렬이 기어오르며/담쟁이가 담벼락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너의 치열한 투혼은/먼 우주를 향해 푸른 두 귀를 열고/오체투지, 외로운 분투로/탈환하는 생의 고지마다/초록 깃발을 펄럭이며… 저릿저릿한 수직의 허공에/찬란한 길의 벽화를 그린다(‘담쟁이 벽화’ 중)

시인 조선영(사진)이 새 시집 ‘천마도에 대한 상상’(빛남)을 냈다. ‘담쟁이 벽화’처럼 숨이 막힐 듯 치열한 관찰을 바탕으로 잔인한 생존의 법칙을 발견해내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다섯 손가락을 갈퀴처럼 펼치고 거친 벽을 기어오르는 담쟁이 덩굴에서 오체투지의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느껴진다. 고비를 넘길 때마다 깃발을 힘차게 흔들어 보지만, 기어오를 벽은 끝이 없고 우주는 너무 넓다.

‘사마귀론’에서 나타나는 관찰은 잔인하다. ‘담쟁이 벽화’에서 애써 내보이던 절망 속의 희망마저 드러나지 않고, 암사마귀의 서늘한 짝짓기를 매크로 렌즈를 들이댄 듯 묘사할 뿐이다. 오랜 은둔의 기다림 끝에 찰나의 걸낫을 걸어오는 예리한 발톱… 나무의 착시, 가장 근접한 관절의 곁가지를 지긋이 꺾었다… 사냥질은 상식을 뒤엎는 짝짓기 치명적인 배신의 후기이다(‘사마귀론’ 중)

그의 작품을 지배하는 정서는 비극적인 서정이다. 이런 서글픈 서정의 끝 막다른 길에 날을 세운 어떤 절망이 치열하고 절박한 시를 만들어내는 것일까. 어느 청순한 가을날/간다온다 말도/떠돌 청산도 없이/가만히 손끝에 만져지는/청석같은 사람아(‘청석’ 중)

“국제신문 복간 뒤 첫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였던 오빠와 문학을 좋아했던 아버지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시인의 꿈을 키워왔고 지금도 키우는 중”이라는 조 시인은 “남편 먼저 떠나보내고 아이들 성장해 떠나고 홀로 있는 날이 무척 길었는데, 그런 나를 지탱한 게 시였다. 시를 쓰거나 읽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의지하며 이번 시집에도 그런 절박한 마음이 많이 담겼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