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동 감독 만나 혜성처럼 데뷔
- 자유로운 영혼 가진 20대 연기
- “유아인·스티븐 연과 호흡 만족
- 시대정신 담긴 작품 하고싶어”

20대 여배우 기근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한국 영화계에 단비 같은 배우가 등장했다. 칸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이창동 감독의 ‘버닝’(개봉 지난 17일)에서 반짝이는 연기를 해낸 전종서가 그 주인공이다.

	데뷔작인 영화 ‘버닝’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20대 청춘 해미를 연기한 전종서. 파인하우스필름 제공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 종수의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전종서)등 세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강렬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전종서는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는 20대 청춘 해미를 연기했다.

이 감독은 “전종서 씨를 보는 순간 ‘이 사람은 이제껏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닝’의 해미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이 보였고, 이 사람밖에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며 캐스팅 이유를 밝혔다. 그의 말처럼 전종서는 신인의 신선함과 맑음, 당돌함, 그리고 날 것 같은 생생함이 느껴지는 연기가 매력적이다.

지난 19일(현지시간) 폐막한 제71회 칸영화제에 참석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데뷔작으로 영화계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전종서를 만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서 들었다.

-요즘 ‘버닝’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고 있어 놀라움의 연속일 것 같다.

▶모든 것이 새롭다. 또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저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가고 있다. 사회성이 부족한 것 같고, 저의 새로운 모습도 발견하고 있다. 뭔지도 모르면서 하는 일들도 있는데, 예전이면 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것들을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칸영화제에 참석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일일 텐데, 본상 수상이 불발돼 아쉬움도 있었겠지만 어떤 시간을 보내고 왔나?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 정체불명의 남자 벤, 종수의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 등 세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비밀스럽고 강렬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버닝’. 파인하우스필름 제공

▶영화제에 참석한 경험이 많은 배우라면 달랐을 것 같은데, 제가 칸영화제에 대해서 잘 몰라서 기대감 자체가 없었던 것 같다. 가기 전에는 여권을 만들고, 캐리어를 사야 한다는 1차원적인 생각을 했다. 레드카펫에서 섰을 때는 열기가 뜨거웠고, 플래시 자체가 뜨겁기도 했다(웃음). 자리가 주는 무게감이 있어서 마냥 즐기기에는 무섭고, 얼어 있었다.

-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르마니 카페가 기억에 남는다. 옷을 팔면서 그 앞 테라스에서 커피를 팔았는데, 와인 잔에 주는 커피가 맛도 있었지만 하늘색이 예쁘고 자연바람이 솔솔 불어와서 좋았다. 또 옆에 있는 사람이 뭘 하는지 신경을 안 쓰는 분위기가 좋아서 같이 간 스태프와 매일 갔다.

-1994년생으로, 요즘 데뷔하는 배우들에 비해 조금 늦었다고 할 수 있다. 연기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가졌나?

▶영화를 좋아했다. 보는 것을 좋아하고,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고, 항상 가까운데 영화가 있었다. 제가 이 일을 좋아하고, 이 일도 저를 좋아하면 서두르지 않아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마냥 시간을 보내지 않았고, 배우 지망생들이 하는 일들을 하면서 지냈다.

-이 감독과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가?

▶처음 이 감독님을 봤을 때 ‘키가 크다, 걸음걸이가 느리다,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제가 하는 이야기를 그렇게 들어주셨던 분은 없었던 것 같다.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귀 기울여주고,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관심을 보여주셨다.

-‘버닝’의 시나리오를 받고 어떻게 분석했는가?

▶분석은 안 했고, 그냥 읽었다. 상황 자체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하라고 감독님이 말씀하셨다. 또 살이 많이 빠져서 더 이상 빠지면 안 된다고 하셨다. 캐스팅되고 빨리 촬영이 진행돼서 영화에 필요한 마임 수업만 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해미가 종수 앞에서 존재하지 않는 귤을 먹는 마임을 한다. ‘버닝’의 원작소설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헛간을 태우다’에도 등장하는 대사인 “귤이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귤이 없다는 것을 잊는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존재와 비존재. 현실과 비현실 속에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나서 이 이야기가 무얼 의미하는지 생각하게 됐다. 마찬가지로 영화 속의 비닐하우스나 우물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실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화 전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어떤 물음표를 주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다.

-또 인상적인 장면은 종수 집 마당에서 노을을 보며 즉흥적으로 춤을 추는 것이다. 카메라는 오른쪽으로 움직이며 노을 색의 변화를 보여준다. 이 색깔은 해미가 아프리카에서 봤던 노을 색과 같다.

▶노을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그렇게 직시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자연의 순리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살고 있음에도 거역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 춤도 순리에 적응하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 춤을 위해 며칠 간 리허설을 했고, 본 촬영은 시간 때문에 빠르게 진행됐다.

-유아인 스티븐 연과 호흡은 어땠나?

▶두 분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 제가 헤맬 때마다 누군가 곁에 있어서 의지가 많이 됐다. 감독님은 모니터링을 할 때 한 테이크를 더 찍는 이유에 대해 항상 설명해주셨다.

-데뷔작으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어떤 배우 혹은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는지를 본다. 이 시대에 필요한 말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역할이나 장르, 독립영화, 상업영화 등과 관계없이 오디션을 볼 것 같다. 그런데 당장은 여행을 가고 싶다. 칸을 다녀오니 여행에 대한 갈증이 생겼다.

이원 기자 latehop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