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왔다.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란 말이 이를 잘 대변해준다. 생활의 긴요한 도구이자 신앙이나 예술행위의 훌륭한 재료였다. 기하학적 문양과 기마인물상 등을 표현한 울산 천전리 각석과 고래 사냥 모습을 담은 반구대 암각화는 수천 년 전 선사시대상을 지금의 우리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주는 소중한 매개체다. 단순한 돌덩이가 아닌 국가가 보물로 지정한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문자가 나온 이후 돌은 오래 보존되는 좋은 기록물이기도 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어로와 수렵을 시가 형식으로 풀어 돌에 새긴 석고(石鼓)가 석문(石文) 시대의 효시격이다. 우리나라에선 조선 후기 추사 김정희에 의해 활짝 꽃이 핀 금석문의 뿌리에 해당된다. 추사의 손을 거치면서 전국의 산야에 묻혀 있던 비문들이 되살아났다. 신라 진흥왕순수비의 내력이 밝혀지는 등 그의 '금석과안록(金石過眼錄)'은 바위에 새겨진 글의 가치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철종 3년(1852년)에 나온 이 책으로 금석문에 대한 우리 인식의 지평이 한 단계 높아졌다.

돌을 잘 다루던 우리 민족이라 바위에 하늘을 담아내기도 했다. 만 원권 지폐 뒷면 혼천의와 함께 바탕 그림에 쓰인 고구려의 석각 천문도가 대표적이다. 세로 2m 가로 1.2m 크기의 바위에 북극성을 중심으로 1467개의 별자리가 새겨진 세계적으로 진귀한 항성표다. 이 석각은 당나라군 침입으로 소실됐지만 탁본이 조선 태조 때 발견돼 천상렬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로 복원되면서 고구려시대 천문술을 전하고 있다.

문화재로서 석각의 보존 관리가 강조되는 시절이다. 해운대를 작명한 신라 말 대학자 최치원 선생의 필체가 살아있는 '해운대(海雲臺) 석각'이 심하게 훼손돼 해운대구청이 보존 방안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동백섬 남쪽 바위에 새겨진 이 석각이 해풍과 오염물질 등으로 크게 마모된 것이다. 부산의 자랑거리인 해운대의 유래를 간직한 부산의 기념물이다. 선생의 혼이 담긴 이 석각이 잘 보존될 수 있는 방안이 찾아지길 바란다. 해운대 석각이 부산의 문화재보존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물이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