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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이웃생각 /이상섭

저녁식탁 위에 오른 아내가 만든 아귀찜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2-09 20:37:56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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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옆집 살다 이사 간 사모님의 대표 요리, 그 맛 기억 새록새록
퇴근시각이 임박해서였다. 아내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데 문자 내용이 너무 클래식했다. 서방님, 언제 오시나요? 허걱, 오늘따라 이 무슨 애교 작렬이람. 그렇다고 무시했다간 집안 분위기 순식간에 냉골로 변할 수 있었다. 적당히 분위기 맞춰 문자를 날렸겠다. 아니, 부인. 무슨 일로 그러시오? 그러자 무섭게 다시 날아오는 문자. 맛있는 저녁식사 준비 중이옵니당, 홍홍홍. 나는 얼른 창밖의 하늘 표정부터 살폈다. 아내가 기대하던 첫눈은 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대관절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음식타령이람. 혹시 옆집 사모님이 별미라도 해서 건넨 걸까. 그럴 리 없었다. 옆집 선생님 내외가 이사를 간 지 일년이 다 되어 가니까. 음식 생각 탓일까. 갑자기 시장기가 몰려왔다. 뱃속에서 강아지 한 마리가 뛰어노는 기분이었다. 근데 무슨 음식을 장만하는 거지? 아내의 대표작을 아무리 생각, 생각, 생각, 생각, 해봐도 떠오르는 거라고는 이거다 하는 메뉴는 없고 생각나는 건 카드뿐이다. 결국 집에 가서 놀란 척하며 확인하기로 작정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오늘따라 교통체증이 더 심한 듯했다. 가다가 섰다가, 섰다가 다시 가다가. 이러다간 모처럼 장만한 음식 냉장고로 직행하는 건 아닐까. 초조감 탓일까. 운전대 위의 손가락이 저절로 타닥거렸다. 그때였다. 차창 밖에서 날카로운 목청이 울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 둘이 서로를 향해 고성에 삿대질까지 하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엎어져 있다. 정황으로 보건대 저 쓰레기통이 말썽을 피운 모양이었다. 냄새가 월담을 했더라도 풍요의 열쇠를 찾아 도시의 거리를 나란히 헤매는 이웃 처지에 좀 참지, 에이 쯧쯧. 하고 보니 문득 이웃에 살던 선생님의 안부가 궁금했다. 아직 약주를 많이 드시는지, 약주를 드시면 지금도 음악을 크게 틀어놓으시는지. 평생 영어를 가르치신 분답게 우리 아이들에게도 영어책을 선물해준 적이 있었다. 그게 고마워 한번은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갔다가 선생님을 뵌 김에 부러 모셔와 좋아하는 약주를 대접한 적이 있었다. 그날, 선생님께 약주 많이 드신다고 사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했더니, 냅다 "노우 프라블럼!" 하면서 왜장을 치시는 바람에 얼마나 당황했던가.

아마 그 이후일 것이다, 사모님이 더 자주 우리집을 들락거린 것이. 맞벌이를 하니 언제 반찬할 시간이 있겠냐며 방금 무친 나물을 건네기도 했고, 별미로 만들어 봤다며 한번 맛만 보라며 찜 종류를 디민 적도 있었다. 심지어 기제사를 지낸 한밤중에도. 문제는 사모님의 엉덩이였다. 한 번 오셨다하면 이러쿵저러쿵, 미주알고주알 넋두리를 끝없이 쏟아내시니 아내로서는 버거울 수밖에. 어쩌면 그게 나이 터울 탓인지 모르겠다. 어머니뻘이신 사모님한테 붙잡혀 앉아 말상대가 되어주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을 테니까.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집을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냄새가 진동했다. 무슨 음식이기에 기특한 냄새를 풍기는 거지? 순간 나도 모르게 옆집 눈치부터 살폈다. 새댁 부부는 나란히 외식이라도 나갔는지 조용하기만 했다. 서둘러 현관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가 환하게 웃는다. 웃음에 약간 '설정 티'가 났지만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식탁 위에는 풀장만 한 대형 접시가 놓였고, 아귀찜이 수북이 담겨 있었다. 더군다나 회를 동하게 만드는 선홍빛 색깔이라니. 찜을 보는 순간 옆집 사모님 생각이 났다. 사모님의 대표작이 바로 이놈이었으니까. 어쩌면 아내 또한 그 맛을 잊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무튼 나는 수저부터 그러쥐었다. 한데 요리를 입에 넣자마자 이맛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옆집 사모님 요리와는 달리 형언할 수 없는 오묘한 맛이 났던 것이다. 왜 그래? 맛이 없어? 내 표정을 살피던 아내가 묻고 나섰다. 맛에 너무 창의성을 발휘한 거 아냐? 너무 스릴 있어서 없던 용기를 발휘해야겠는걸. 아내는 뿌루퉁해 하더니 다시 입을 연다. 근데 이거 만들면서 사모님 생각 많이 났어, 계셨으면 레시피라도 물어볼 걸 싶어서. 그러더니 아내는 무슨 생각인지 엉뚱한 말을 내뱉는다. 근데 이거 옆집이랑 나눠먹어도 될까? 아내의 말에 나는 눈만 씀벅이고 앉아 있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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