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항구다. 이 말을 실감하는 것은 부산 시내에서 내 눈으로 항만의 풍경을 목격할 때다. 예를 들면 대청로를 지날 때가 그렇다. 부산근대역사관을 지나치고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오른편 차창에 스쳐 지날 즈음, 대청로는 약간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있다. 바로 그 부분에서다.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가로수들이 길 저 끝으로 점점 작아지면서 시선을 그 끄트머리로 모이게 한다. 시선을 모아둔 그 원경에 삼각형 지붕이 인상적인 국제여객터미널 건물이 보인다. 운이 좋은 날은 그 건물 옆에 여객터미널보다 더 큰 페리선이 흰 구름을 점점이 이고 정박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대청로가 만들어지고 100년이 넘었으니 부산사람들이 오랫동안 보았던 부산항 풍경이다.
부산항을 차창 너머로만 바라보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차에서 내려 직접 항구를 걸어보는 것이 좋다. 부산에는 항구를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많이 있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은 부평동 시장에서 오른쪽으로 서구청을 두고 자갈치로 향하는 길이다. 지금은 보수대로라고 부르는 길이다. 차로 중앙의 버스정차장에서 내려 자갈치 쪽으로 바라보면 골목 끝에 푸른 하늘이 새어나온다. 지금은 길 위에 세운 자갈치 주차장에 가로 막혀 보이지 않지만 그곳이 부산의 남항이다. 1930년대에는 지금의 서구청 자리가 대정공원이었고 보수대로는 구덕산 기슭에서 흘러나온 맑은 보수천이 흐르고 있었던 곳이었다.
이처럼 길을 걸어 나가 그 길 끝에 서서 온몸 가득 항구의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영도 대평동을 추천한다. 영도대교 아래를 지나 영도경찰서 뒷길을 걷는다. 선박의 엔진 부품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던 이 길은 영도대교를 만들 때부터 있던 길이다. 언제나 작은 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던 선류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대평북로를 걸어 나간다. 지금은 없어진 영도도선장을 지나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에 유진조선소가 보인다. 내가 추천하는 길은 그 유진조선소에서 북쪽으로 난 길이다. 자동차 두 대가 겨우 교행 하는 그 길 끝으로 걸어 나가면 오른편에 선진엔지니어링이 자리 잡고 있다. 80년 전에는 다나카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조선소 건물들을 양쪽으로 두고 그 길을 걸어 나가면, 그 길 끝에 위험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겹겹이 붙어 있고, 심지어 '길 없음 돌아가시오'라는 주의 표지판이 걸려 있다. 그 표지판까지 걸어 나가면 실감나는 항구의 풍경과 만난다. 파도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배와 갈매기와 시시각각 변하는 물결의 색, 그리고 눈앞에 바다 저 너머에는 갈매기 날개를 이고 있는 자갈치 시장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용두산 공원과 부산타워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풍경이다. 가끔씩 통영 사람들을 싣고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쾌속선이 파도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때는 서 있는 안벽까지 파도가 차고 오르니 조심할 것.
실은 영도는 부산항 풍경의 보고다. STX 곁의 대평남로31번길, 부산 어업정보 통신국이 자리 잡고 있는 남항서로91번길, 그리고 영도대교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안벽에 붙은 봉래나루로도 기가 막힌 장소다. 선류장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바라보면서 걸어 나가 부산대교 아래를 지나면 이제는 바지선이 정박해 있는 광경과 만난다. 그리고 그 너머로 대선조선소의 크레인이 허공을 허우적대고 있는 풍경. 비린내 나는 항구 풍경을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이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1936년에 제작된 지도에 이 길들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길은 부산사람들에게 80년 가까이 부산항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100년 전에 부산 사람들이 온몸으로 체험했던 그 길과 그곳에서 보던 항구의 풍경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 어떤 건축물보다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그리고 후세의 우리에게도 오래도록 아끼고 가꾸기를 염원하면서 남겨둔 풍경의 골동품이다.
대청로에서 보는 부산항 풍경은 110년이나 오래된 풍경이며, 대평동의 안벽에서 보는 부산항 풍경은 80년이나 묵은 풍경이다. 100년 된 부산항을 볼 수 있는 길이 아직도 여기저기에 많이 숨어 있다.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