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100년 묵은 부산항 풍경 /강영조

부산의 항구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문화 유산이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2-22 19:14:01
  •  |   본지 2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부산은 항구다. 이 말을 실감하는 것은 부산 시내에서 내 눈으로 항만의 풍경을 목격할 때다. 예를 들면 대청로를 지날 때가 그렇다. 부산근대역사관을 지나치고 용두산 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이 오른편 차창에 스쳐 지날 즈음, 대청로는 약간 내리막으로 접어들고 있다. 바로 그 부분에서다. 길가에 줄지어 서 있는 가로수들이 길 저 끝으로 점점 작아지면서 시선을 그 끄트머리로 모이게 한다. 시선을 모아둔 그 원경에 삼각형 지붕이 인상적인 국제여객터미널 건물이 보인다. 운이 좋은 날은 그 건물 옆에 여객터미널보다 더 큰 페리선이 흰 구름을 점점이 이고 정박해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대청로가 만들어지고 100년이 넘었으니 부산사람들이 오랫동안 보았던 부산항 풍경이다.

부산항을 차창 너머로만 바라보는 것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차에서 내려 직접 항구를 걸어보는 것이 좋다. 부산에는 항구를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가 많이 있다.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곳은 부평동 시장에서 오른쪽으로 서구청을 두고 자갈치로 향하는 길이다. 지금은 보수대로라고 부르는 길이다. 차로 중앙의 버스정차장에서 내려 자갈치 쪽으로 바라보면 골목 끝에 푸른 하늘이 새어나온다. 지금은 길 위에 세운 자갈치 주차장에 가로 막혀 보이지 않지만 그곳이 부산의 남항이다. 1930년대에는 지금의 서구청 자리가 대정공원이었고 보수대로는 구덕산 기슭에서 흘러나온 맑은 보수천이 흐르고 있었던 곳이었다.

이처럼 길을 걸어 나가 그 길 끝에 서서 온몸 가득 항구의 풍경을 만나고 싶다면 영도 대평동을 추천한다. 영도대교 아래를 지나 영도경찰서 뒷길을 걷는다. 선박의 엔진 부품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던 이 길은 영도대교를 만들 때부터 있던 길이다. 언제나 작은 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던 선류장을 끼고 오른쪽으로 대평북로를 걸어 나간다. 지금은 없어진 영도도선장을 지나 왼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에 유진조선소가 보인다. 내가 추천하는 길은 그 유진조선소에서 북쪽으로 난 길이다. 자동차 두 대가 겨우 교행 하는 그 길 끝으로 걸어 나가면 오른편에 선진엔지니어링이 자리 잡고 있다. 80년 전에는 다나카 조선소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다. 조선소 건물들을 양쪽으로 두고 그 길을 걸어 나가면, 그 길 끝에 위험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겹겹이 붙어 있고, 심지어 '길 없음 돌아가시오'라는 주의 표지판이 걸려 있다. 그 표지판까지 걸어 나가면 실감나는 항구의 풍경과 만난다. 파도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배와 갈매기와 시시각각 변하는 물결의 색, 그리고 눈앞에 바다 저 너머에는 갈매기 날개를 이고 있는 자갈치 시장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용두산 공원과 부산타워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는 풍경이다. 가끔씩 통영 사람들을 싣고 부산항으로 들어오는 쾌속선이 파도를 일으키며 지나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때는 서 있는 안벽까지 파도가 차고 오르니 조심할 것.

실은 영도는 부산항 풍경의 보고다. STX 곁의 대평남로31번길, 부산 어업정보 통신국이 자리 잡고 있는 남항서로91번길, 그리고 영도대교를 앞에 두고 오른쪽으로 안벽에 붙은 봉래나루로도 기가 막힌 장소다. 선류장에 정박해 있는 배들을 바라보면서 걸어 나가 부산대교 아래를 지나면 이제는 바지선이 정박해 있는 광경과 만난다. 그리고 그 너머로 대선조선소의 크레인이 허공을 허우적대고 있는 풍경. 비린내 나는 항구 풍경을 몸으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 이만한 곳이 또 어디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1936년에 제작된 지도에 이 길들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길은 부산사람들에게 80년 가까이 부산항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100년 전에 부산 사람들이 온몸으로 체험했던 그 길과 그곳에서 보던 항구의 풍경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 어떤 건축물보다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그리고 후세의 우리에게도 오래도록 아끼고 가꾸기를 염원하면서 남겨둔 풍경의 골동품이다.

대청로에서 보는 부산항 풍경은 110년이나 오래된 풍경이며, 대평동의 안벽에서 보는 부산항 풍경은 80년이나 묵은 풍경이다. 100년 된 부산항을 볼 수 있는 길이 아직도 여기저기에 많이 숨어 있다.

동아대학교 조경학과 교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피란수도 부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제동
  2. 2[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54> 충청도 새뱅이
  3. 3김도영 연봉 5억…역대 4년 차 최고
  4. 4“인생 2막 성공하려면…독서하라, 멘토 정하라, 명상하라”
  5. 5교통비 환급되니 버스·도시철 더 탄다…동백패스 선순환
  6. 6첫날부터 北 핵보유국 인정…‘한반도 비핵화’ 접나
  7. 7마린시티 ‘영화의 거리’ 노후…12년 만에 손 보기로
  8. 8국회 계엄군 영상에…尹 “해제의결 딴 곳서 하면 돼” 황당주장
  9. 9탄핵심판대 직접 선 尹 “부정선거 밝히려 계엄”
  10. 10기능 중복·조직 비대화 지적에 부산테크노파크 ‘7단 3실’로 조직개편
  1. 1국회 계엄군 영상에…尹 “해제의결 딴 곳서 하면 돼” 황당주장
  2. 2탄핵심판대 직접 선 尹 “부정선거 밝히려 계엄”
  3. 3崔대행, 방송법 등 3건 거부권…“대안 재논의 취지”
  4. 4野 “檢이 경호처 수사 제동…내란특검 필요” 압박
  5. 5김미애 의원, 중국인 건보 무임승차 방지 법 개정안 발의
  6. 6“사하구민 생활개선 공약이행, 앞으로도 노력할 것”
  7. 7“영장판사실 노린 계획적 습격”…직원, 자판기로 문 막고 저항
  8. 8정권연장 48.6% 교체 46.2% 팽팽…국힘 지지율 46.5% 5주 연속 상승
  9. 9일부 국민의힘 김해시의원 ‘빨갱이 운운 발언’ 파문
  10. 10與 “분노 원인 안 살피고 폭도 낙인”…野 “사법부 판단 부정·선동한 與 탓”
  1. 1기능 중복·조직 비대화 지적에 부산테크노파크 ‘7단 3실’로 조직개편
  2. 228일 서울→부산 귀성길 최대 7시간 40분(종합)
  3. 3공모주 장기보유 배정물량 확대…기관투자 ‘단타’ 막는다
  4. 4주가지수- 2025년 1월 21일
  5. 5스타벅스 톨 사이즈 음료, 24일부터 22종 가격인상
  6. 6유상증자 철회 금양, 해외투자 유치 추진
  7. 7성장 둔화 카드사, 고객 홀대…6개월 무이자 할부 또 없앴다
  8. 8한은 “계엄사태, 환율 30원 올리고 성장률 0.2%p 낮춰”
  9. 9부산신보 ‘코로나 청구서’ 2007억 변제
  10. 10트럼프 취임 첫날 韓경제·업계 '혼란'…정부 "대표단 美 급파"
  1. 1‘피란수도 부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제동
  2. 2“인생 2막 성공하려면…독서하라, 멘토 정하라, 명상하라”
  3. 3교통비 환급되니 버스·도시철 더 탄다…동백패스 선순환
  4. 4마린시티 ‘영화의 거리’ 노후…12년 만에 손 보기로
  5. 5형제복지원 해외입양 진짜였다…진실화해위, 최소 31명 확인
  6. 6부산남구문화재단 9월 문 연다…정관 제정 등 설립작업 본격화
  7. 7부울경 시도지사, 수도권 일극체제 맞대응 논의키로
  8. 8정원보다 80여 명 더 온 청중 ‘메모 열기’…휴식시간 ‘깜짝 탱고쇼’ 분위기 달아올라
  9. 9檢, 서부지법 침입·난동 63명 영장 청구
  10. 10블랙요원 기밀 유출 군무원 징역 20년
  1. 1김도영 연봉 5억…역대 4년 차 최고
  2. 2롯데 대만전훈 참관단 모집
  3. 3김하성, 이정후와 한솥밥? MLB닷컴, SF행 불지펴
  4. 4MLB 3089개 안타 전설 이치로, 명예의 전당 만장일치 입성할까
  5. 5바도사, 호주오픈 女단식 4강 선착
  6. 6프로농구 PO 4월 12일 점프볼
  7. 7KLPGA 4월 부산서 국내 개막전
  8. 8‘윤나고황’·손호영 억대 연봉 진입
  9. 9“내 강점은 핸들링·빠른발”…군필 기대주 롯데 한태양 [부산야구실록]
  10. 10손흥민 침묵한 토트넘, 리그 3연패 수렁
다시 열린 트럼프 시대
충성파로 내각 채우고 입법부까지 장악…트럼프 폭주 예고
다시 열린 트럼프 시대
美공장 지어 무역장벽 우회…‘미국통’ 등용 네트워킹 강화도
강동묵의 디톡스 [전체보기]
市 노동안전보건센터, 조속한 설립 필요하다
기후문제에도 정의로와야 할까?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영원히 기억을 쌓아가야 할 부산포
부산 원도심 부활에 대한 근원적 생각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탈핵, 독일이 하면 우리도 할 수 있다
싱크홀, 부산시는 후진 행정을 할 것인가?
국제칼럼 [전체보기]
을사년 탄핵 정국 속 부산은
의정갈등 1년, 국민 생명 볼모 끝내야
기고 [전체보기]
대학가에 태풍이 몰려오고 있다
담임 포기 두 배…예비교사 교육 바뀌어야
기자수첩 [전체보기]
‘기관장 잔치’된 체전 폐회식…선수가 주역인 축제 만들자
불운의 사고로 치부한 경찰…기강해이 드러나자 여론 반전
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전체보기]
이형(고종), 이승만, 박정희, 윤석열 - 그들의 계엄
“Busan is good”, Really?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조선시대 조상들의 고독 대처법
‘정년이’로 돌아온 여성국극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오징어 게임2’, 국내 반응 미지근한 이유
기로에 선 한국 경제,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면
도청도설 [전체보기]
옥중 메시지
건강하게 사는 길
메디칼럼 [전체보기]
B형 간염 환자가 알면 좋을 5가지
지혜와 재생의 새해
박상현의 끼니 [전체보기]
사하구 노포 맛집
2024 B-FOOD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뇌력 키우기 4원칙 ‘잘먹기’
뇌력 키우기 3원칙 ‘머리 쓰기’
사설 [전체보기]
트럼프 첫날 ‘미국 우선’ 질주…세계 초긴장
탄핵 변론에 나와서도 부인만 거듭한 ‘윤’
세상읽기 [전체보기]
야간근무, 유방암, 그리고 산업재해
점점 가난해지는 부산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인구 위기 본질과 노인 연령의 합리적 조정 방안
주치의 제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트럼프 2.0 그리고 대한민국 해양정책
K-조선 슈퍼 사이클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고환율의 명령
삼성전자가 빠진 함정
전호환의 두잉세상 [전체보기]
수능 폐지를 위한 10년 교육 실험
東明 강석진 선생의 40주기를 기리며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퇴계 이황과 서애 류성룡의 생가
공원묘원에도 명당은 있다
차재원의 정치평설 [전체보기]
‘위헌 대통령’ 퇴진과 함께 재발방지책도!
김정은보다 못한 미국 대선 대비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유효기간
체크인, 체크아웃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겨울 나그네
부산콘서트홀의 파이프 오르간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자연’ 임신의 검정 강아지
천경자 ‘내 슬픈 전설의 22페이지’
CEO 칼럼 [전체보기]
해양패권 재건을 꿈꾸는 미국
지역의 가치와 소중함

Error loading images. One or more images were not found.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
스토리 박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