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야기 없이 살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를 만나면(또는 전화, 문자·카톡 등) 누군가의 뒷 담화, 놀라게 한 뉴스, 어제 본 드라마 등의 이야기로 수다를 떤다. 무인도에 표류하거나 독방에 감금되지 않는 한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이야기를 하거나 들으면서 산다. 이렇듯 공기와 같이 그 존재감은 느끼지 못하나 없으면 안 되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이야기와 소설이나 영화의 스토리가 같은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것인가? 결국 누군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같다. 누군가에게 벌어진 흥미로운 사건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가 간절히 원하는 뭔가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수기, 경험담, 무용담, 사연, 신문의 기사, 저녁뉴스, 스포츠뉴스에도 다 누군가의 스토리가 있다. 그것을 극적인 플롯으로 재구성하고 극적 기법을 써서 전달한다면 소설이 되고 영화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을 쓰지는 못 한다. 그 이유는 각각 그 매체에 어울리는 형식이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문자를 읽는 즐거움을 줘야 하고, 영화나 드라마는 보는 즐거움을 줘야 한다. 그 나름의 형식미를 갖추지 못하면 좋은 소설, 좋은 영화, 좋은 드라마라고 볼 수 없다. 연극, 영화, 소설, 뮤지컬, 모두 각각의 형식을 뺀다면 결국 세상의 수많은 누군가의 이야기 중에서 하나일 뿐이다. 여기서 형식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영화는 카메라의 움직임, 앵글, 숏의 사이즈, 숏들의 연결에서 고유한 형식은 영화만의 스토리텔링이라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쓴 대본을 바탕으로 배우가 연기를 하고 촬영감독이 촬영을 한다. 여기서 작법, 연기술과 촬영기법은 모두 스토리텔링이다. 작가만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배우, 촬영감독, 프로덕션 디자이너, 컴퓨터 그래픽 전문가 모두가 스토리텔러가 되는 것이고, 연출가는 이 모든 스토리텔러들을 총지휘하여 허구의 세상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스토리가 '무엇을 만드느냐'라는 문제라면 스토리텔링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다.

(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가 하반기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스토리텔링 집단창작 클럽 육성'은 작가 육성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단순히 작가 그룹을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가능성 있는 작가를 적극 발굴,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부산에서 제작되는 드라마를 서울작가가 집필한다는 것은 부산에서 쓸 만한 작가를 찾기 힘들다는 원인도 있지만, 그보다 "쓸 만한 재목들이 직업인으로서의 전문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고향인 부산을 떠나야 한다"는 문제도 도사리고 있다. 쉽게 말해 영상도시 부산에서 전문영상작가로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다. 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의 출범과 협의회의 작가육성 계획은 이런 열악한 현실에 있는 지방 작가지망생들에게 희소식이 분명하다.

여기저기 산재한 훌륭한 스토리 자원을 발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이 좋아하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매체별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대본을 만드는 전문작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서울에는 이미 수년 전부터 몇몇 제작사와 투자사들이 사내 작가팀을 구축해 운영 중이다. 한 프로젝트를 한 명의 작가가 전담하는 게 아니라 아이템 발굴에서 취재, 집필까지 공동으로 한다. 회사는 이들로부터 수시로 아이템을 제안 받고 각 아이템의 성공 가능성을 검증한다. 다양한 관객층을 만족시킬 전략적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많은 사람이 머릴 맞대고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엔 이런 작가 그룹의 형태들을 특화해 각 매체별 콘텐츠를 개발하는 스토리회사들도 등장했다. 처음부터 주문자(개인, 기업체, 제작사, 투자사 등)가 원하는 기획의도에 맞게 상품성과 대중성을 갖춘 콘텐츠를 얻을 수 있는 일종의 '맞춤 콘텐츠 납품회사'인 셈이다. 창작 환경의 변화다.

작가는 운 좋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적극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역의 스토리텔링이 성공하려면 전문작가를 육성해야 한다. 스토리 전문작가야말로 창조적 지역 콘텐츠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부산스토리아카데미 원장·시나리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