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중학교 국어교과서 개정판에서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의 작품들을 뺄 것을 권고했다고 한다. 말이 권고이지, 평가원이 검정교과서 승인권을 갖고 있기에 사실상 지시나 다름없다. 10년 이상 교과서에 실려 학생들에게 진한 감동을 안겨준 시와 산문들을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삭제하라는 것은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 작품들은 시인이 오로지 자연을 벗삼으며 심혈을 기울여 쓴 것이지, 정치적 산물이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어설픈 잣대를 들이대 한국의 대표적 문학작품들을 교과서에서 퇴출시키려 하는 건 '표현의 자유' 침해를 넘어 정치적 탄압이라는 비난을 들어도 이상할 게 없다.

평가원이 밝힌 원칙을 보면 마치 고무줄자 같다. 정치적 중립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정치적 파당적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는 것으로, 도 의원은 금배지를 달았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된다고 봤다. 그렇다면 김춘수 시인의 '꽃' 같은 작품들은 그가 국회의원이 됐을 때 왜 빼지 않았나. 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선 출마를 선언할 경우, 교과서 11권에 실린 그의 글들은 어찌할 것인가.

도대체 도 시인의 작품들에서 정치적 파당적 견해를 전파하는 부분이 있기나 한가. 가령 퇴출대상인 그의 시 '담쟁이'만 보더라도 험난한 세파나 장벽을 기어이 극복하고야 마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꿈나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이런 작품이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미명 아래 교과서에서 빠져야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번 평가원의 권고는 결코 옳지 못하다. 그건 중립적이고 균형잡힌 게 아니라 오히려 정치색을 덧씌우는 편향된 시각이다. 제도와 예술, 정치와 문학은 선이 그어져야 마땅하다. 평가원의 권고 결정은 철회돼야 하며, 이 같은 황당한 일들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차제에 제도적 장치와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