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선택권' 조례안이 부산시의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시의회의 무능이 여실히 드러났다. 시의회는 지난 5월 조례안을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래놓고 불과 두 달 만에 번복했다. 시의회가 조례안에 반대하는 일부 단체의 압력에 굴복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의회가 이처럼 스스로의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쉬 바꿔서야 지자체 입법기관으로서 제 구실을 하기는 어렵다.

어제 시의회의 조례안 표결 결과를 보면 시의원들이 조례안 재의결과 관련해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한 흔적이 역력하다. 표결 결과 찬성 27명, 반대 6명, 기권 18명이다. 기권표가 전체 투표의 무려 35%를 차지했다. 두 달 전 상임위와 본회의를 만장일치로 통과됐던 조례안이 재의결 표결에서 이처럼 기권표가 많았다는 것은 시의원들이 교육청과 일부 관련 단체의 반발을 의식해 찬성도 반대도 아닌 기권이라는 아주 무책임한 방법으로 사태의 본질을 피해간 것에 다름아니다.

학습선택권 조례는 이미 지난해 9월 인천시의회에서 통과돼 시행 중이다. 시행 이후에도 일부 일선학교가 야간자율학습을 강제하는 등 제대로 지키지 않아 학생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또 서울 광주 등의 시·도에서는 학생인권조례의 형태로 교육청이 채택을 추진하면서 벌써부터 논란이 됐던 사안이다. 이처럼 전례도 있고, 논란이 일상화된 조례안을 부산시의회가 이렇게 허술하게 처리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조례 채택에 반대하는 측이 내세우는 사교육 기승, 학력 저하, 교육 혜택 불균형 등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건강과 공교육의 내실화를 위해 조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례안 재상정 이후 학부모 1500여 명이 조례안 통과에 찬성하는 서명을 시의회에 제출한 것도 이 같은 학부모 학생들의 열망을 반영한다. 향후 학습선택권 조례와 같은 중차대한 사안에 대해 시의회의 책임있는 자세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