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에서 길을 묻다'는 올해 국제신문 기획물 중 꾸준하고 수준 있는 내용으로 재미있다. 넘치는 정보에 하나 보태는 것이 아니라 기획의도처럼, 생각하는 일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옆에서 일어나는 문화현상을 철학적으로 설명하고 방향을 제시해 준다. 9월 26일 자에서도 '사람 마음속을 열어보면 저마다 하나의 풍경이 있어요'하는 아녜스 바르다 감독을 소개하며 '우리의 내밀한 풍경과 깊은 정서적 경험을 보여주는 영화…영화가 보여주는 시의 세계, 치유의 세계에 모두가 흠뻑 빠져들면 좋겠다'며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한 안목을 제시했다.

싸이 현상이 다 이해되지 않았을 때 특히 다음 글에 공감했다. '강남이란 '사막의 신기루'를 놀이터 모래밭에서 선글라스를 낀 모습으로 유쾌하게 뒤집었다. 참으로 판소리와 탈춤에서 보여준 전통, 즉 해학과 풍자에 기반을 둔 한국의 비판적 문학 전통을 계승하지 않는가(철학에서 길을 묻다 23)', '가창력으로 규정짓던 정형성과 규범을 무너뜨리고, 미학적 깊이나 진지함으로부터 탈출한 것…이 감성의 해방 기제는 지금 지구상에서 '싸이'가 최고일 것이다(김영준의 미감단상 13)'는 내용에 고개가 끄덕여 졌다. 또 '음악평론가 강헌의 대중음악 산책 75'에서도 싸이의 세계화가 주는 의미를 잘 알려주었다.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경찰스타일이 연제구에서 만들어져 화제라는 기사를 접하고 보니 글로벌 가수가 된 싸이를 잘 해석하고 즐기는 곳은 부산이란 생각이 든다.

우리 지역인이 쓰는 문화이야기도 알차다. 10월 8일 50회를 맞은 '주영택이 발로 찾은 부산의 전설 보따리'는 선생이 신념을 갖고 직접 현장을 찾아다니며 채록, 문헌조사, 글쓰기를 한다고 한다. 지역 주민과 아이들에게 부산 곳곳은 옛이야기로 가득한, 스토리텔링 콘텐츠가 아주 풍부한 곳임을 알게 해준다. 계속해서 다양한 작품이 나오길 기대한다. 10월 6일 자 1면 '경남 단감 세계인의 과일 됐다' 기사는 반가웠다. 부울경 주민의 삶 이야기가 1면을 차지하니까. 그것도 좋은 소식이 말이다. 9월 26일 자 '낙동강 하구 생태길 내달 탄생' 기사도 관심 있게 읽었다. 내달? 벌써? 언제 저만큼 됐지? 가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소식은 다른 어떤 매체보다 지면 할애를 많이 하고 심혈을 기울였다. 9월 28일 자 'BIFF Special Edition' 24면은 말 그대로 스페셜하게 기획했다. 그런데 영화제 등 온통 축제 기사로 볼거리가 많아서 재미있긴 한데 그 사이 뭔가를 놓칠까봐 불안하다. 최근 '근무시간 마약…안전 팽개친 고리원전'과 신고리 1호기·영광 5호기 고장 등 원전 관련 기사가 잇따라 단발적으로 나왔다. '같은 이슈라도 신문에 따라 시각이 다르므로 여러 종류의 신문을 봐야 입체적인 통찰이 생긴다. 이것이야말로 지역 신문이 중요한 이유이다. 중앙에 대해 지방은 소수자이다. 숫자가 적다는 게 아니라 힘이 약하다는 말이다. 펠릭스 가타리는 소수자가 제 목소리를 낼 때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것을 '분자혁명'이라고 부른다. 미시적 차원의 변화가 이끌어내는 거대한 변화를 가리킨다. 자동차가 아주 빠르게 달릴 때는 도로 위의 작은 돌부리도 큰 영향을 준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에너지가 충만할 때는 미시적 변화도 사회를 바꿀 수 있다'. '철학에서 길을 묻다 27'에서 얻은 사유다. 아이들을 포함해 8000여 명이 고리 1호기 폐쇄를 위한 인증샷을 벌이고 있다. 1만 명이 목표다. 그것도 전국에서 1만 명 확보가 이렇게 어렵다니. 서울시청 싸이 공연 인파를 보며 걱정이 되었다.

10월 8일 자 2면 독도와 이어도 수호에 3, 4개 기동전단이 필요하다는 기사와 5면 한국 탄도 미사일 사거리 300㎞에서 800㎞로 늘인다는 기사는 동아시아 평화를 저해하는 방향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대선을 제대로 된 공약과 공론이 제공되는 활발한 선거 축제로 만들어야 하는데도 문화란 이름을 앞세운 너무 많은 상업적 축제가 난무해 건전한 시민의식을 마비시키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말이다. 책과 아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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