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주 전에 한·중·일 협력사무국 창설 1주년 기념 학술회의가 서울에서 열렸다. 최근 조어도(센카쿠 열도) 영유권을 둘러싼 중일 간의 갈등, 한일 간의 위안부와 독도문제 등 동북아시아 3국의 양자 관계에 역사와 영토문제로 불편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시기에 3국의 참가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한·중·일 협력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아주 고무적인 일이었다.
한·중·일 3국은 정치체제의 이질성, 과거사 문제의 존재, 민족주의의 대두, 역내 주도권 경쟁이라는 문제 외에도 초강대국 미국의 중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협력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장애요인이 적지 않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한·중·일 3국 간의 경제, 문화적 교류는 계속 발전되어 왔고 상호 의존도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3국은 세계 인구의 22%인 15억 2500 만 명의 인구를 갖고 있으며 전 세계 GDP의 20%, 세계무역의 17.5%를 점하고 있다. 또한 북한 핵이나 환경문제, 자연재해 등 지역 및 범세계적 문제에 대한 3국의 공동 대응 필요성도 크다.
3국 간 협력이 공식적으로 출발한 것은 1999년 아세안+3 정상회의 때 개최된 3국 정상회동이다. 이후 3국 정상은 한국 측의 제의로 2008년 후쿠오카에서 최초로 별도 회의를 가짐으로써 3국 간 협력은 새로운 추동력을 얻게 되었으며, 2011년 가을에는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TCS)이 정식으로 발족돼 3국 간 협력의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었다고 하겠다. 현재 한·중·일 3국 간 협력에는 무역과 투자 같은 비정치 분야가 매우 활발하다. 한·중·일 정상회담이 시작된 1999년 1300억 달러로서 전 세계 교역액의 13%정도였던 3국 간 교역은 2011년 7000억 달러로 5배 이상 증대되었고 전 세계 교역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7.5%로 확대되었다. 한·중·일 국민의 상호 왕래도 1999년 650만 명이었는데 2011년엔 1700만 명으로 약 2.5배 증가하였다. 아세안 국가들과 한·중·일의 금융협력인 창마이 이니시어티브나 한·중·일 통화스와프 협정 같은 것은 동아시아지역의 금융시장 안정은 물론 이 지역 국가들의 무역확대와 경제발전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또한 한·중·일 3국은 2012년 중에 FTA(자유무역협정) 교섭을 개시하기로 합의하였으며 황사문제에 대한 공동 대응이나 에너지 전략대화, 물류협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진행해왔다.
물론 정치 안보 면에서의 3국 간 협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3년 3국 간 협력에 관한 정상들의 공동선언에는 3국 간 안보 대화를 강화하고 군 관계자들의 교류와 협력을 촉진하며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과 군축에 협력한다는 선언적 내용이 들어 있다. 북한 핵 문제도 3국의 공통관심사로서 자주 협의되었지만 아직도 이 지역의 가장 큰 현안으로 남아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비전통 안보분야에 대한 협력은 논의가 비교적 활발히 진행되었다. 특히 재난관리 문제는 2004년 발생한 동남아의 지진해일에 이어 2008년 중국의 쓰촨성 대지진, 2011년 초 일본의 대지진과 대규모 지진해일 피해를 겪으면서 3국은 포괄적인 재난관리체제를 개발하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사나 영토문제는 국내정치나 국민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중·일 협력 논의가 이런 이유로 가끔 지장을 받기도 하지만 반대로 3국 간 협력 확대의 노력은 적어도 양자 관계의 대립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그러한 협력이 3국 국민 간의 이해와 신뢰를 높여 궁극적으로 3국이 이 지역의 항구적인 평화와 번영을 위한 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지역의 주도권을 위한 상호 간 경쟁이 심하기 때문에 한·중·일 3국 간 협력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하도록 기대되고 있다. 2011년 한·중·일 협력사무국이 서울에서 발족하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는 점을 감안, 향후 3국 협력의 확대를 위한 한국 측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요망된다.
전 주중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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