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남구는 용(龍)과 관련된 지명이 유난히 많은 지역이다. 용호동(龍湖洞) 역시 마을 가운데 있는 작은 호수에 용이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여기까지 알고 있는 주민들은 많지만, 용호동이 소금의 고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용호동은 원래 분개라고 불렸다. 바닷물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 모양의 염전이 있는 갯벌이란 뜻으로 분개라 했는데, 이를 한자로 바꾸면 분포(盆浦)가 된다. 현재의 용호 1·3동에 자리 잡았던 분개 염전은 한일합방 이전까지만 해도 행정구역상 동래부 남촌면 분포리(東萊府 南村面 盆浦里)였다. 경상도지리지에는 동래현에 25좌, 동평현에 40좌의 소금 굽는 가마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래 남구의 염전은 400여 년 전부터 대연동 석포마을 동쪽, 지금의 부경대학교 대연캠퍼스가 자리잡고 있는 사분개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곳의 넓은 갯벌은 조수차가 심해 천일제염을 하기에 적당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바다의 자연매립 등으로 인해 염전은 남쪽 해안인 용호동 쪽으로 옮겨진다. 당시 용호동은 인가가 없었고 동이(소금을 굽는 가마)만이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갯가였다. 분포 또는 분개라는 지명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된 것 같다. 조선시대 선조들이 '분이 있는 포구'라는 뜻으로 분포 또는 분개리로 명명되다가 주로 분개로 부르게 된 것이 '분개 염전'으로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1910년 발간된 조선총독부 재정통계 연보에 의하면, 한일합방 1년 전인 1909년 당시 이곳 분포의 연간 제염량은 44만4200근으로 집계돼 있다. 분개에는 분(盆)이 24개 있었으며 한일합방 직전에는 6개가 남아 있었다.

소금은 제조방식이 다양하다. 먼저 염밭(鹽田)에서 강한 햇볕으로 건조시킨 모래를 해수로 여과한 함수(鹹水)를 주물 솥에서 끓여 수분을 증발시키면, 미세한 결정체의 소금이 되는 전오염(煎熬鹽)이 있다. 전오염은 부산 용호동, 김해 녹산, 울산 방어진 등에서 생산되었다. 침전시설에 바닷물을 끌어 올려 햇볕에 증발시키면 굵은 결정체의 소금이 되는 천일염(天日鹽)도 있다. 분개 소금은 천일염으로 질이 좋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한일합방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전오염 염전으로 개발됐다. 해방이 되고 난 후부터는 이규정 씨와 박두상 씨 등 한국인들이 염전을 인수해 경영했다. 이규정 씨는 필자의 선친으로 약 2만8000평의 전오염 염전사업을 펼쳤다.

전오염을 생산하는 과정은 어릴 적부터 지켜봐서인지 기억이 뚜렷하다. 먼저 육지와 가까운 바닷가에 둑을 쌓은 뒤, 수문을 통하여 둑 안의 염밭 사이 수로에 바닷물을 채운 뒤, 염밭 군데군데에 서실(여과시설)을 만들고, 여름 뙤약볕에 며칠동안 건조시킨다. 그런 다음, 염도가 높은 물, 즉 함수를 수로를 통해 지하 함수탱크에 저장해 두었다가 음력 2월 장담는 철이나 가을 김장철에 함수를 주물솥에 끓여 증발시켜 소금을 생산한다.

용호동 분개 염전은 품질이 뛰어났다. 부산에서도 인기가 좋아, 용호동 아주머니들에 의해 초량, 대신동 등 부산 전역으로 팔려나갔다. 해방 직후 소금은 전매업이어서 전매청에 전량 납품돼 일반인들에게 판매되는 배급제도가 실시되기도 했다.

옛날 분개 염전 지역은, 현재 LG메트로시티 아파트 단지 일부와 환경공단 남부사업소, 분포아파트 주변, 삼성시장, 삼성아파트 주변이었다. 이러한 염전은 1962년 택지화가 시작되면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동국제강이 이전하고, 또다시 그 자리에 국내 최대 규모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분개 염전터는 상전벽해와도 같은 거대한 변화를 맞아 흔적도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꼽으라고 하면 빛과 소금을 얘기한다. 특히 소금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것으로, 예로부터 돈과 같이 귀하게 여겨왔다. 이러한 소금의 보고가 남구 용호동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분개 염전의 역사를 심어주는 데 우리 기성세대들이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산 남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