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물어보자. 왜 한국어를 공부하느냐고. 동남아인들은 산업연수생이나 관광가이드 등 취업 목적이 많을 것이다. 미국 유럽 일본인들은 한국 TV드라마나 한류스타를 첫머리에 꼽지 않을까. TV 드라마 '겨울 연가' 때문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일본 중년여성들이 많다. 지금은 소녀시대나 싸이의 노래를 한국말로 부르는 노랑머리 외국인들을 TV나 유튜브에서 흔히 본다.

일본에서 똑같은 질문을 던지면 십중팔구는 일본산 만화나 애니매이션을 든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이나 망가(만화)는 서양인들에게는 경이의 세계. 번역본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의 차이까지도 이해하고 싶어 아예 일본 유학을 결심한 이들도 적지 않다. 이른바 일류(日流)는 한류(韓流)보다 세계무대 데뷔가 훨씬 빠르다. 19세기 유럽 미술의 중심 프랑스 화단에 영향을 준 우키요에(浮世繪)를 비롯해 검도, 유도, 다도, 꽃꽂이, 선(禪) 등 다양한 동양문화가 일본류로 포장돼 전파됐다.

그런 일본이 한류 견제에 나섰다. 다음 달 싱가포르에서는 일본 문화콘텐츠 전용 TV가 방송을 시작한다.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도 방송을 준비 중이다. 일본의 민간방송사·광고회사가 일본 정부와 손잡고 추진하는 사업. 일본 정부는 나아가 올 가을에는 민관 합동으로 1조 원 규모의 '재팬 펀드'를 조성해 일류를 본격 지원한다. 일본산 드라마와 애니메이션 등을 방송해 마니아 층을 확산시킨 뒤 관련 산업 진출과 관광객 유치 확대 등을 꾀한다는 전략.

일류보다 두려운 것이 중국류, 즉 화류(華流)의 부상이다. 화류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소룡, 성룡,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등등. 화류라는 이름만 붙여지지 않았을 뿐 우리와 함께 한 지 오래다. 중국 정부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화류' 공세를 펼치면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중국으로서는 화류가 한류, 일류의 원조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고구려를 당의 지방정권이라고 하거나, 서사·남사군도의 섬들을 자국영토라고 생떼 부리는 것을 보면 '설마' 하고 넘길 일이 아니다. 어쨌든 일류, 화류가 설치면 한류는 샌드위치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