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부산 부산진구 일부 사립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이 공립어린이집 건립을 집단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세상에 무슨 이런 일이 있나 싶다. 나라 보육 사정을 알고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 그들은 정원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공립 시설이 들어서면 운영난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 짓겠다면 정원을 절반 이상 줄이거나 장애아 전담 어린이집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이고, 어린이집과 유치원도 마찬가지라고는 하나 이건 심했다. 미래 대한민국을 짊어질 새싹들을 밥그릇 취급하는 듯해 몹시 기분이 상한다. 공익을 위해 뒤로 물러서고 희생하는 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성실하게 맡아줄 수 있는 보육시설을 선택할 권리가 부모들에게 없다는 말인가. 이야말로 공공정신 결핍증이라 하겠다.

민간 부문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말에 그들은 대기업과 구멍가게 싸움이나 마찬가지라는 논리를 들이댔다. 골목상권 죽이기로 몰고가는 주장이 참으로 어이없다. 어디 비교할 게 없어 상품과 아이들을 동일 선상에 올려놓는가. 영유아 보육은 나라의 운명이 걸려 있는 백년대계 사업이다. 부모만이 아이를 맡아기르는 시대는 지났다. 사회 전체가 아이들을 알뜰살뜰 돌봐야 한다.

마땅히 질 높은 보육을 추구해야지, 하향평준화를 해서 먹고살자는 논리는 나라의 장래를 망치는 일이다. 부산의 어린이집이 전국적 이슈로 떠올랐던 사건을 잊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 아이를 내동댕이치고, 손바닥으로 패는 짓을 예사로 하지 않았나. 아동학대를 저지른 원장이 "제발 진상을 규명해달라"고 거짓말하던 모습을 보며 분통을 터뜨린 시민이 어디 한두 명이었을까.

뿐만 아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불량식품을 먹이고, 정부지원금을 착복하거나 횡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부산에서는 보육교사들의 쥐꼬리 월급까지 떼먹은 어린이집 원장이 사법조치됐다. 억대 프리미엄을 얹어 유치원을 불법 매매한 사례도 있었다. 이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는 소중한 우리 아이들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이러니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겠나.

사실 민간 시설 비리에는 정부 책임이 크다.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에 젖어 준비도 없이 무상보육을 실시했으니 부작용이 안 날 리 없을 터. '돈 주면 될 것 아니냐'는 무책임한 정부로 인해 국민과의 약속은 뒤틀려 버렸다. 돈은 돈대로 퍼붓고, 부모들은 애태우는 꼴이 된 것이다. 과도하게 민간부문에 의존하면서 공보육은 질식사할 지경이 됐다. 정부 통제로 낮게 책정된 보육료 탓에 교사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폭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민간 어린이집이 바로 설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공립 시설을 확충해야만 한다. 전체 보육예산 중 공공시설 설립에 드는 비중은 0.5%에도 못 미친다. 민간에 공적 역할을 맡긴 것을 급격히 바꿀 수 없다면 진입 장벽을 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공익성을 철저히 따져서 허가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보육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더라도 대부분의 민간 시설을 사회복지법인이 맡아서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종교법인을 유도할 수도 있겠다. 부모들이 선택권을 갖도록 민간 시설의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제 우리의 보육 정책도 양에서 질로 업그레이드돼야 한다.

엔트로피라는 말이 있다. 쓸모없는 에너지를 뜻하는데 우리 사회가 이 상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게 '엔트로피의 법칙'이다. 하지만 엔트로피를 줄이는 사례들도 얼마든지 있다. 공정한 법질서와 도덕 체계를 갖는 것 등이 이에 해당된다. 건전한 사회는 이를 근간으로 한다. 미래 세대를 잘 키워내는 일은 건전한 사회 형성에 매우 중요하기에 꿈나무를 쓰다 버리는 상품으로 취급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아이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억압하며 두려움을 심어준다면 나라의 희망은 없다. 말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알고 있다. 그 끔찍한 경험과 순간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