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와 진주의 비빔밥, 남원의 추어탕, 대구의 따로국밥, 전남의 홍어삼합….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여행의 또 다른 재미는 현지 음식을 맛보는 것. 조선 제일의 식도락가라면 허균(許筠)을 빼놓을 수 없겠다. 귀양지에서 예전에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썼던 맛기행서가 '도문대작(屠門大嚼)'이다. '푸주간 앞에서 입맛을 다시다'는 뜻.

'도문대작'은 떡 11종, 채소와 해조류 21종, 어패류 39종, 육류 6종, 차·술·꿀·기름·약밥 등을 소개했다. 방풍죽은 강릉, 석이병(石耳餠)은 표훈사, 백산자(白散者·유과의 일종)는 진주, 다식은 안동, 밤다식은 밀양, 차수(叉手·칼국수)는 여주, 엿은 개성이 최고라고.

생각보다 역사가 오래지 않은 명물 음식도 많다. 경기도 포천의 '이동갈비'는 1970년대 한 할머니가 주머니 사정이 궁한 군인들을 위해 갈비 한 대를 둘로 쪼개 팔았던 게 유래. 1950년대 마산 오동동의 '혹부리 할머니'가 아귀를 마당에 던져 놓았더니 얼었다 녹았다 하며 빠닥빠닥 말라 있더라고. 찜으로 내놨더니 불티나게 팔렸다. 통영의 '충무김밥'도 상하지 말라고 주꾸미로 만든 속을 따로 만들어 팔았는데 1981년 국풍 때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생선회, 동래파전과 함께 부산의 3대 음식으로 꼽히는 돼지국밥의 역사도 그리 오래지 않다. 한국전쟁 때 이북 출신 피란민들이 미군부대에서 나온 돼지뼈를 우린 국물로 설렁탕을 흉내낸 게 시초. 일제 때 밀양의 한 식당이 원조라는 설도 있다. 두툼한 살코기와 비계를 썰어넣은 국물을 새우젓으로 간을 맞춘 돼지국밥은 겨울 음식으론 제격.

관객수 1000만 명을 넘긴 영화 '변호인'의 인기를 타고 돼지국밥이 전국 식도락가들의 입맛을 돋구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델 삼은 주인공 송우석(송강호 분)이 공짜로 먹고 줄행랑쳤던 식당을 변호사가 된 후 날마다 찾아가 시켜먹는 장면 때문. 영화를 본 후 돼지국밥 먹는 부산 사람이 많다고. 타지 사람도 부산 가면 먹어 보겠다고 벼른다나. 영화 속에선 "돼지국밥엔 정구지(부추)를 많이 넣어야 돼"라며 맛나게 먹던 송강호는 실제론 잘 먹지 못한다지만. 돼지국밥을 부산 대표음식으로 키워볼 만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