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자의 비애'란 말이 있다. 이 글귀에는 2인자의 삶이 그리 순탄치 않음을 내포하고 있다. '토사구팽(兎死狗烹) '이란 고사성어도 2인자의 운명을 은연중에 담고 있다. 실제 역사도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유방과 함께 중국을 통일한 장량, 한신, 소하의 삶이 그러했고 손권의 주유도 같은 길을 걸었다. 토사구팽을 당하거나 1인자에 의해 숙청됐다. 우리 역사에도 조선 최고의 2인자로 꼽혔던 정도전 역시 이방원에 의해 살해됐다.
스포츠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에서 가장 행복한 선수는 당연히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일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행복은 은메달이 아니라 동메달을 딴 선수의 몫이라고들 한다. 2위에게는 1위를 놓친 진한 아쉬움과 패배의식이 훨씬 큰데 반해 3위는 메달을 따지 못한 수많은 다른 선수들과 자신을 비교해 자부심이 더 강하다고 한다.
이런 2인자의 고민은 도시문제도 그대로 적용된다. 제2도시라는 허울은 있으나 명성은 없다. 대한민국을 기억할 때 수도 서울만 있을 뿐이지 부산은 없다. 늘 서울의 그늘에 가려 희생을 강요받아 온 것이 오늘날 부산의 모습이다. 전후 국가경제의 중추로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었지만 현실은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부산의 달동네와 지금까지도 악취를 내뿜고 있는 동천과 수영강은 부산이 온전히 내어준 우리나라 공업화의 젖줄이었다. 그럼에도 현실은 참담하다. 대한민국은 동천과 수영강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 2인자의 고단한 삶이 우리 부산에도 투영돼 있는 듯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부산은 이제 스스로 2인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늘 습관처럼 되뇌이며 스스로를 세뇌시켜 왔던 제2도시의 멍에를 벗어 던져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을 것이다. 2인자로서 누려왔던 것 또한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선택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 얄팍한 당근에 기대어 있을 때가 아니다. 과감히 떨쳐 일어나 일류를 향해 몸부림쳐야 한다. 이는 어느 누구 한 사람만의 힘만으로는 힘들다. 380만 부산시민 모두의 가슴과 머리에서 제2도시의 이미지를 지우고 글로벌 일류 명품도시 부산의 도시상을 새롭게 각인시켜야 한다.
이제 부산은 제2도시가 아닌 일류도시화 비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부산은 충분한 잠재력과 자원을 가지고 있고 그동안 그 가치를 입증해 왔다. 현재 우리나라 그 어떤 도시들보다도 부산은 역동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도시발전을 하드웨어 측면에서 본다면, 부산의 외곽순환도로를 완성하는 북항대교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동부산관광단지 조성, 에코델타시티를 중심으로 한 서부산권 개발, 북항재개발을 통한 원도심의 재개발, 문현금융중심지 등은 이미 부산이 일류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스스로 갖추고 준비하는 자산이다.
부산은 이러한 자산을 기반으로 이제는 소득 3만 달러가 아닌 4만 달러 시대를 열어 가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보다 앞서 계획하고 한 발 앞에서 갈수 있어야 1등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도시 전체의 고부가가치화 전략이 필요하다. 제조업이 중요한 기반산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제조업만으로는 일류도시를 꿈꿀 수 없다. 오히려 지금은 제조업의 성장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고부가 지식 서비스 산업에 대한 전략적 육성이 더 필요하다. 최근 부산이 선박금융공사 설립을 두고 정부와 설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부산의 인프라와 경쟁력을 확대해 해양·파생금융분야 1위로 가기 위한 전략이다. 부산이 각 분야에서 국내 1위, 나아가 글로벌 1위를 늘려간다면 부산의 일류도시 비전은 생각만큼 멀지 않다.
그리고 그 기틀을 닦아야 할 책임은 오늘의 부산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 지금의 우리가 일류도시 부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뿌리 깊게 박혀 온 2등의 설움은 이제 잊자. 그리고 새로운 1등 도시를 향해 새롭게 준비하고 시작하자.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정부에 손을 내밀기 전에 정부가 도와줄 수밖에 없는 명분을 만들고 기틀을 닦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을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할 때다. 그것이 일류도시, 일류시민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한다.
부산상공회의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