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일본 총리가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고 고노 담화를 수정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지난 주말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역사인식과 관련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며 과거사에 대해 반성한 두 담화를 부인하려던 최근의 움직임에서 선회할 것을 약속했다.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한일 관계에 갈등 국면을 조성하던 태도에서 벗어나겠다니 여간 다행스럽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도 아베 총리 발언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이를 계기로 오랫동안 단절된 한일관계의 정상화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3차 핵안보정상회의가 한일정상회담 성사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섣부른 관측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번 아베의 입장표명이 그동안 한일관계의 악화를 우려한 미국의 압박이 작용했을 것이란 점에서 진정성에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아베는 두 담화에 대한 계승 의지를 밝히는 자리에서 평화헌법을 개정하겠다고 했다. 아베는 "현행 헌법이 점령군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며 "전후체제로부터 탈각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이는 침략역사에 대한 반성보다 일본이 전승국으로부터 부당하게 강요당했다는 인식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통국가화와 군사대국화의 야욕을 버리지 않았음을 시사해 준다.

아베 정부가 무라야마와 고노 담화를 진정으로 계승하겠다면 과거사에 대한 정중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등의 잇단 망언에 대해 깊은 사죄와 함께 보상문제에 대해서도 전향적 태도를 취해야 마땅하다. 왜곡된 역사교과서를 강요하고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등 구태를 답습한 채 두 담화를 계승하겠다는 것은 립서비스에 불과하다. 이런 이중적 태도 때문에 양국관계 파탄의 책임을 한국 쪽에 돌리려는 얄팍한 노림수라는 지적마저 나온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과거사 반성은 결코 진정성을 얻기 어렵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