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오면서 여러 유형의 폭력을 경험했다. 폭력의 기억 속에는 습관적 폭력을 행사한 교사들이 먼저 떠오른다. 교칙을 어긴 이유는 물론이고 성적이 떨어져도 맞았고, 올라도 더 오르라고 맞았으며 체육 시간에 줄을 잘못 섰다고 맞았고, 점심시간 이후 음악감상 시간에 졸다가도 맞았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여 어설프게 데모 대열에 휩쓸렸다 잡혔을 때 곤죽이 되도록 나를 폭행했던 자는 한동안 악몽 속에 주연으로 출연했고, 비슷한 경험을 군 복무 중에도 했다. 

지금도 가끔 주말 나들이 길, 고속도로에서 수시로 어이없는 폭력과 마주하고 10년 된 내 고물차가 폭발적인 스피드의 스포츠카로 변신하여 폭력을 행사한 차를 따라잡아 응징하고 싶은 욕망이 돋는다. 자전거가 도로교통법에 차로 분류됨에도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나서면 대형차들의 폭력에 생명의 위태로움을 경험한다. 심지어 창을 내려 침을 뱉거나 욕하는 운전자도 만난다. 그때마다 내 안의 악마적 폭력성을 이성으로 다스리며 생각한다. 이 나라에서 도를 닦고자 하는 자는 굳이 깊은 산중이 아니라 도로로 나설 일임을.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는 '휴머니즘과 폭력'에서 몸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에게 폭력은 숙명이라고 말한다. 폭력이 인간 본성의 구성소라는 이러한 생각은 로렌츠, 프롬, 오르테가 이 가세트, 프로이트 등 여러 학자의 공통적인 주장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우리는 폭력의 숙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요한 갈퉁은 폭력이 상대에게 해를 끼치고자 하는 직접적·물리적 행위만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폭력을 인간의 잠재적 실현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기에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복지, 자유, 정체성의 욕구를 위협하는 모든 폭력을 경계하였다. 우리는 여전히 학교와 직장, 특히 특수집단인 군대 등에서 심각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직접적 폭력은 중심과 주변, 사회적 강자와 약자로 분할된 착취구조를 고착화하는 구조적 폭력을 만들어 낸다. 또 구조적 폭력은 착취구조에 대항하려는 사회적 약자들의 조직화와 의식화를 저지하고자 문화적 폭력을 만든다. 요컨대, 직접적 폭력이 사건이고 구조적 폭력이 과정이라면, 문화적 폭력은 두 폭력의 유지 보수 기제로 작동한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법은 결국 이러한 인간의 숙명적 폭력을 막기 위한 것이며, 국가가 필요한 이유도 무정부 상태의 혼돈과 폭력을 막기 위한 합의에서 시작한다.

그럼 국가의 독점적 폭력은 어떻게 제어되는가. 이미 한나 아렌트, 지그문트 바우만, 슬라보예 지젝 등을 통해 국가폭력이나 공권력 남용, 착취나 억압기제에 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폭력을 해결하고자 국가가 필요하지만, 정작 나치즘과 파시즘이 보여주듯 국가의 독점적 폭력이 더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국가 폭력을 제어하고자 학자들은 법치강화를 주장하나, 법의 지배가 폭력 독점의 남용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더 큰 문제는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공동체를 해체하고 그 자리를 시장으로 대체했다. 정치와 경제, 언론 권력은 음성적으로 결탁하여 일상화된 탈법과 비리, 자본을 향한 과도한 욕망에 포획되었다. 학교와 직장에서 남보다 더 나은 성과를 강요받으며 구성원 간의 경쟁은 이제 덕목이 아니라 규율이 되었다. 경쟁은 타자를 받아들여 서로를 살리고 성숙시키기 위한 것이지 상대를 억압하고 낙오시키는 것이 아니다. 구성원이 제로섬의 경쟁을 내면화하면 그 공동체에서 폭력은 관행이 되고 경쟁이 치열할수록 폭력은 우리 안에 잠행한다. 폭력을 다룬 영화나 드라마, 심지어 뉴스를 통해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스펙터클로 소비한다. 

한동안 우리는 너무 많은 죽음과 폭력을 보았고, 그 기저에 국가가 개입되어 있음을 안다. 정의의 이름으로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피해자의 슬픔을 손쉽게 해소하려 하거나 희생양을 찾아내 폭력의 대상으로 삼아 속죄하려는 국가의 시도를 경계한다. 타자를 상실한 슬픔과 아픔을 기억하며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된다. 이러한 인간이 만든 공동체, 그 공동체가 추구하는 공동선이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 공감과 공존, 신뢰와 연대의 가치가 황폐한 경쟁, 불신과 배제의 부조리를 대신하기 바란다.  

폭력은 감시와 처벌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인간은 원래 모순과 결여의 존재이다. 그 허약한 존재들이 모여 함께 걸어가는 존재가 인간이다. 내 안 타자의 크기가 내 존재의 크기이며, 타자를 죽이면 나도 절멸한다는 인식이 인간으로서의 숙명적 폭력을 극복할 방법이다. 몸을 지닌 인간이 폭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일지도 모르지만, 폭력을 없애기보다 그것을 넘어서려는 노력이 인간의 길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