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중국에서 들여온 물자를 '당화(唐貨)'라고 한 것은 일개 왕조였던 당이 중국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쓰였기 때문. 지금도 '당'을 접두어로 한 단어가 적잖다. 당나귀, 당면(唐麵), 당목(唐木), 당사(唐絲) 등등. 그런가 하면 낮잡는 말로도 쓰인다. 군기가 엉망인 군대를 '당나라 군대'라 하는 식. 땅꼬마의 '땅'이 '당'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나라여서 그랬을 터.
중국사의 원류를 하(夏)·은(殷)에서 찾고, 그리스·로마에 대응되는 고전시기를 주(周)라 한다면 최초로 통일제국을 이룬 것은 진(秦). '차이나(China)'란 이름도 진에서 유래했다. 장기간 통일제국을 유지한 왕조로는 한(漢)을 먼저 꼽겠지만 최고의 황금기는 당(唐)이다. 전성기엔 판도가 돌궐, 위구르, 토번까지 뻗쳤다. 현종 때 인구가 지금의 남한보다 많은 5200만 명 정도였다고. 수도 장안은 100만이 넘는 세계 최대 도시. 남북으로 길게 뻗은 주작문가(朱雀門街) 좌우로 110개의 시장이 늘어서 있었다.
각국의 상인과 유학생, 승려도 넘쳐났다. 요즘으로 치면 뉴욕 이상의 국제도시. '오릉 젊은이들 금시(金市)동쪽에서 은안장 흰말 타고 봄바람에 끄떡이며 낙화 밟고 어디로 가나. 희희덕거리며 호녀(胡女)의 술집으로 가네'란 이백의 시 '소년행(少年行)'대로 국제적 환락도시이기도 했다. 호녀란 인도, 페르시아 등 서역 여인. 장안은 실크로드의 기착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했다.
중국이 7~9세기 세계 패권국 당(唐)의 부활을 꿈꾸며 '대당공정(大唐工程)'의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어제 베이징에서 개막된 APEC에 앞서 비회원국 정상을 초청해 "400억 달러를 실크로드 기금으로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실크로드 주변국의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자원 개발에 쓰일 돈.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창설하면서 초기 자본금으로 500억 달러를 댄다. 합치면 100조 원.
중앙아시아~유럽의 육상 실크로드와 동남아시아~인도양~아프리카로 이어지는 해상실크로드를 연결해 풍부한 지하자원과 석유 수송로를 장악하려는 사전 포석. 26개 국가·지역 44억 명, 21조 달러의 경제권을 묶겠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시 주석은 "아시아·태평양의 꿈(亞太夢想)을 실현하자"고 기염을 토했다. 그는 21세기의 당 태종을 꿈꾸는 것일까. 미국이 바짝 긴장하겠거니와 중국과의 FTA에 합의한 우리도 그들의 팽창을 예의주시해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