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체육학 박사학위가 수여되었다. 체육학 박사학위가 없었을 때에는 교육학, 이학, 철학 박사학위로 대신한 적이 있다. 지금도 국내 일부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박사들에게 체육학 박사가 아닌 다른 명칭의 박사학위가 나가고 있기는 하지만, 필자가 졸업한 대학은 교육학 박사학위에서 체육학 박사학위로 변경했는데 본인이 1호라는 측면에서 당시 기쁨도 배가 되었다.

하지만 명함에 체육학 박사를 새기고 다른 이들에게 나를 알리려 할 때 조금 이상해졌다. "체육학 박사도 있어요?"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모습에서 자랑스러움은 다소 쑥쓰러움이 되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많은 수의 체육학 박사가 배출되기는 했지만 아직도 체육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여전히 '운동'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전공이 뭐냐고 물어서 '스포츠경영학'이라고 답하면 "그게 뭐냐"고 다시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질문자도 운동 중에 뭔가를 답할 줄 알았는데 처음 듣는 단어가 나오니 다시 물은 것인데, 답하는 필자도 매번 반복되는 경우가 생기니 힘들 따름이다. 운동은 운동일 뿐이고 체육학에서 전공(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분야)은 학문을 말해야 하는데, 왜 질문자는 운동이라는 것을 미리 염두에 두고 있을까?

체육의 학문화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과거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잘났다고 싸웠을 때가 있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부터 과학을 선점하고 스포츠를 통해 국력을 과시하려던 때가 60년 전 일이다.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계획을 먼저 세웠던 미국은 1961년 러시아에게 인간 최초의 우주 나들이를 빼앗기게 된다. 이에 그 당시 미국 하버드대학의 총장은 체육, 음악, 미술과 같은 '기능중심학과'는 대학 교육과정에서 퇴출되어야 하고 학문 탐구에 보다 전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후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대학의 헨리 교수에 의해 체육을 하나의 학문영역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1960년대 말 미국체육학회는 공식적으로 체육학의 세부 학문을 체육철학 및 체육사, 체육행정 및 관리학, 운동생리학, 생체역학, 스포츠심리학 및 사회학, 체육교육과정 등 6개 부문으로 크게 구분하고 연구하였다. 이후 20년 정도의 세월에 걸쳐 체육은 '신체를 통한 교육' 또는 '신체 교육'이라는 '교육의 이미지'에서 이론적 연구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학문의 이미지'로 탈바꿈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미국 대학 및 대학원의 프로그램은 이러한 역사를 따라 흘러가고 있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체육학은 현재 15개 세부 학문으로 나누어진다. 앞서 제시한 내용에 더하여 스포츠경영학, 체육측정평가, 특수체육, 스포츠영양학, 여가레크리에이션, 무용학, 발육발달학 등도 포함된다. 즉, 테니스 전공은 없고 테니스를 잘 치기 위해 생체역학의 기전을 응용하게 되고, 테니스를 통해 사회성이 좋아지는가를 스포츠사회학의 영역에서 연구하는 것이다.

학사관리에 엄격한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한 여성 골프선수 미셀 위(위성미)를 생각하면 정답이 있다. 미셀 위의 학위 또는 전공은 골프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학이다. 골프는 본인이 즐기는 운동이자 직업이고 공부하고자 한 분야(전공)는 우리말로 신문방송학 또는 언론학이 된다.

미셀 위를 보고 "너의 전공은 골프 아니니?"라고 우문(愚問)을 한다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현답(賢答)이 나올 것이다. 일반인의 잘못된 인식도 고쳐야겠지만 운동을 전공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체육인들도 교정이 필요해 보인다.

부산대 체육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