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란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규범'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원칙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지켜야 하는 약속인 것이다. 우리 사회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그만큼 원칙은 훼손해서는 안 되는 불변의 진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원칙은 꼭 지켜져야 하는 법이다. 사회를 이끄는 모든 이들은 원칙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러나 때로는 원칙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유연한 사고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공직자나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이 원칙만을 쫓으면, 물론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 속된 말로 중간은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칙을 넘어 유연한 사고를 발휘하지 못하면 발전은 있을 수가 없다.

'이 세상에 더는 새로운 것은 없다',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말처럼 완전한 창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기존의 것을 깨부수고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데서 탄생하기도 한다. 특히 비즈니스에서 창조는 나만의 영역을 개척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해 개성공단 협력공장 중 거래하고 있는 몇 곳을 방문한 일이 있다. 2000만 평에 달하는 개성공단 중 약 200만 평만 개발해 가동 중이었다. 개발 상황이 미진한 것에 아쉬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지나는 길옆에 산을 이루고 있는 모래였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동행한 협력사 사장에게 물었다. "저 좋은 모래를 왜 썩히느냐? 우리나라에 수출을 하거나, 정 안되면 개성공단 현장공사에 사용하면 좋을 텐데 저렇게 방치하는 이유가 뭐냐?" 협력사 사장은 수출에는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가 많고, 설령 개성공단 입주자가 이 모래를 사용해서 공장을 지으려고 해도 절차가 복잡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모래값을 현금으로 지불해서도 안 된다고 한다. 모래 판 돈을 북측에서 군비로 사용할까 우려한다는 말이었다.

물론, 휴전상황에서 정치·군사적으로 민감한 상황이야 말해 무엇하랴. 하지만 개성공단을 돌아보는 내내 답답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경직된 북측의 사고와 일처리 방식을 보며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개성공단은 수많은 제조업체가 저렴하게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최적지이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특유의 손재주와 성실로 동남아 등의 공장들과 비교해 상품 품질이 월등하다. 개성공단은 아직 생산능률은 부족하지만 세계적으로 강한 경쟁력을 가진 곳이다. 하지만 원칙만을 내세우다 보니 더 크게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툭하면 폐쇄되고 임금 협상에 난항을 거듭하기도 한다. 남북 모두가 융통성을 조금만 발휘해 마음의 문을 연다면 서로에게 이득이 되고 함께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일이다. '안 된다'며 손 놓고 서로 대립각만 내세운다면 누가 해결하겠는가? 계속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입맛에 맞는 것만 있을 수 없고, 길들여 쓰려고 하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도 원칙만이 중시된 것은 아니다.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인 유비 역시 이런 원칙을 넘어 유연한 사고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이제 약관을 갓 벗어난 제갈량을 부하로 삼기 위해 유비가 세 번이나 그의 집을 방문했다는 '삼고초려'는 아주 유명한 고사다. 지금으로 따지면 대기업 회장이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을 입사시키고 싶어 집으로 세 번이나 찾아간 것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유비가 항상 유연한 대처를 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편인 조조가 유연한 인물이었지 유비는 원칙주의자,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전형적인 군주 타입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비는 제갈량을 얻기 위해 원칙을 넘어 유연하게 일을 처리했고, 그 결과 역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고구려의 명장 을지문덕은 수나라 장수 우문중에게 이런 시를 보냈다고 한다. '神策究天文/妙算窮地理/戰勝功旣高/知足願云止'(신비한 책략으로 천문을 연구하고/묘한 계략으로 지리를 궁리하여/싸움에서 이겨 공이 이미 높았으니/만족할 줄 알아서 그치기를 원하노라). 이 시를 통해 을지문덕은 우문중에게 전쟁 승리라는 원칙적인 명분을 주고, 스스로는 전쟁 종료라는 합리적인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을지문덕 장군의 시를 읽으면서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고 얼마나 감사한지 다시 한 번 되새기곤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대충대충이란 있을 수 없다. 항상 원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 원칙이 도를 넘어 오히려 해가 돼서는 안 된다. 지나친 원칙론자가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때로는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운영의 묘를 수 없이 찾아야 한다. 원칙과 합리성이 공존하는 유연한 사고가 가능할 때 우리 사회는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린조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