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들은 부산에 대한 지각이 넓다. 부산의 자연이나 문화를 부산과 연결해 생각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래서 아침 햇살에 비치는 광안리 바다의 빤짝임이나 대저의 짭짤이 토마토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에 사는 즐거움을 느낀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어떨까. 그들은 어떤 생각 속에서 부산을 느끼며 살까. 스스로가 부산의 어린이고 또 청소년임을 자긍으로 느끼며 살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부산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결론적으로 아이들이 부산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들 눈높이에 맞는 '뭔가 다른 것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그 뭔가는 우리 아이들이 이 도시에 살고 있다는 행복감을 스스로 느끼고 타인에게 이를 자신 있게 설명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필자에게 한 가지만 얘기해 보라면 언제나 '동물원'이다. 철창에 갇힌 우울한 표정의 학대받는 동물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자연 같은 동물원, 그 속에서 행복한 동물들과 우리 아이들이 진정으로 교감하며 공존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는 그런 '좋은 동물원'을 얘기하는 것이다.
350만 도시에 제대로 된 동물원이 없다. 오랜 시간을 끌다 힘들게 재개장한 동물원마저 최근 시행사의 폐업에 따라 자금을 관리하던 업체가 시에 이 동물원을 사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것이다.
유년기와 10대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 또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될 수 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기회 제공은 개인을 떠나 국가 미래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시민들은 좋은 동물원이 필요치 않아서 가만있었던 것이 아니라, 워낙 세상이 바삐 돌아가다 보니 잠시 좋은 동물원의 의미와 가치를 잊고 있었을 뿐이다. 100층이 넘는 마천루를 줄지어 짓고, 낙동강변에 수변 신도시를 건설하고, 관광 테마파크를 만들고, 수백억 원이 넘는 이벤트들을 개최하고자 하는 생각과 투자의 10%만이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의 '특별한 행복'을 위해 사용하면 좋겠다.
도시에서 아웅다웅하며 먹고살기 위해 전투적으로 살아가는 우리. 왜 이러고 사는가. 모두 자식들,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터를 닦아주려는 것 아닌가. 너무 다행스러운 점은 자녀 교육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하는 젊은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별난 교육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아이들에게 제공하는 기존 교육방식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젊은 부모가 계속 늘어날 텐데, 그들의 빈 마음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까.
부산시에 부탁한다. 동물원에 대해 원점에서 진지하게 생각해 주면 좋겠다. 현 동물원의 존속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이 부산에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 달라는 얘기다. 삶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건강한 세상으로 또 자연으로 유도할 방법 찾기야말로 이 시대 우리에게 주어진 최대 책무다.
동부산관광단지, 북항 재개발, 에코델타시티 등 일반 도시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대형 개발사업이 부산에서 진행되고 있다. 여길 무엇으로 다 메울 계획인가. 그곳들 어딘가에 좋은 동물원이 자리를 잡는다면 이보다 공익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이미 늦은 얘기라 치부할 수도 있다. 그곳들은 동물원을 지을 값싼 땅이 아니며 적합한 환경이 아니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좋은 동물원을 아이들에게 선물할 방법을 찾아주길 요청한다. 당장이 아니어도 좋다. 확실한 비전 속에서, 시민들도 함께 준비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이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해 봄, 성지곡 동물원 자리에 '더 파크'라는 동물원이 개장했다. 불행히도 지역 민간 사업자의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폐업했던 지난 길을 그대로 따라 걷고 있다. 현 수준으로는 시민들이 원하는 좋은 동물원의 역할을 절대 감당할 수 없다. 수중생물을 테마로 하는 해운대의 아쿠아리움도 마찬가지다. 국제적인 해양도시의 위상에는 크게 부족하다. 비좁은 지하에서 우리 아이들이 해양에 대한 무슨 꿈을 키울 수 있겠는가.
흔히들 도시 발전의 방법으로 '지역 맞춤형 브랜드'를 찾아야 한다고 한다. 부산은 삼포지향으로 불리는 천혜의 자연도시다. 그 자연 속에서 아이들이 흥미롭게 또 재밌게 탐구하고 배우고 접촉하고 또 느낄 수 있는 지역 브랜드가 창출되어야 한다. 일본 최고의 동물원으로 평가받는 아사히야마 동물원(홋카이도 소재)은 '시립' 동물원이다. 달랑 24명 공무원만으로도 세계적인 동물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왜 능력이 부족한 민간 건설사에, 그것도 500억 원이라는 빚보증까지 서가며 이리도 매달리고 있는가. 좋은 동물원의 우선 조건은 땅파기와 건설이 아니다. 운영과 관리의 능력에 있다. 아사히야마 동물원에 가보라. 가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신념과 의지로 동물원을 운영·관리하고 있는지 그 본질적인 이유를 배우라.
동물원은 돈을 버는 곳이 아니다. 동물원은 아이들의 상상력과 자연과의 친화력을 키우는 학교이고 환경 사랑의 품성을 키우는 살아 있는 교육현장이다. 아이들이 움직이면 부모들도 따라 움직인다. 가족이 움직이면 지역경제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들이 크루즈선을 타고 KTX를 타고 부산의 동물원을 찾을 것이다. 이만큼 도시재생과 지역 활성화의 좋은 아이템이 어디 있는가. '바이오-노믹스(bio-nomics)'가 저절로 일어날 것이다.
자연으로 우리 아이들을 돌려놓을 수 있는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보자. 아이들이 진정 행복한 동물원, 아이들이 그곳 가기를 즐기고 그곳의 동물들과 교감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으로 여기는 그런 좋은 동물원 하나쯤을 우리도 이제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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