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선수를 하다가 부상으로 운동을 접고 공부로 방향을 틀어 체육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지인이 있다. 유아체육업체를 운영하는 그에게 얼마 전 다른 지인이 자녀 진로상담을 해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골프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객관적인 평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필자의 지인은 연습장에 동행해 아이의 샷을 지켜봤다. 아이 아버지는 초조한 눈빛으로, 또 한편으로는 기대에 찬 눈길로 지인의 의견을 기다리는데 참 난처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공을 잘치고 소질은 있는데 아이가 전혀 즐거워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억지로 치는 것이 얼굴과 행동에 여실히 드러나 이를 어떻게 얘기해줘야 할지 난감하더라는 것이다. 느낀 대로 말해줬을 때 그 아버지가 그것을 받아들일지도 걱정이 되어 그저 실력과 소질이 있다고만 짧게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그 부자가 앞으로 겪을 일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 아버지는 아들을 선수로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훨씬 더 운동에 매진하도록 일과를 조정할 것이고, 선수로 성공시키기 위해 아들의 모든 일상에 개입할 것이다. 아이가 골프를 정말 좋아한다면 늘어난 연습량과 부모의 간섭을 달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골프에 흥미가 없는데 그저 부모가 배우라니 배웠던 아이라면 그 모든 일이 얼마나 힘겨울까?

1980년대까지만 해도 빈곤 탈출을 위한 성공의 지름길로 운동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다르다. TV에서 본 박지성 김연아 박태환이 멋있어 그 모습을 꿈꾸며 운동을 시작한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녀가 그러한 세계적인 선수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권유로 운동에 입문한 아이도 상당수에 이른다. 원해서 운동을 시작해도 매일 반복되는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하거나 거듭된 실패로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 하물며 부모의 손에 이끌려 운동하게 된 경우라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클 것이다.

칭찬이나 보상 등으로 인한 외적 동기가 어떠한 일을 시작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지속시키는 데에는 내적 동기가 있어야만 한다. 내적 동기란 즐거움 그 자체를 말한다. 내적 동기가 있어야만 힘든 과정과 쓰라린 경험을 이겨내고 또다시 도전할 힘이 생긴다. 좋은 신체조건과 남들보다 일찍 시작한 경력, 부모의 관심 등은 초기에 유리하게 작용해 아이가 대성할 것처럼 보이게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적 동기, 즉 운동으로 인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낄 수 없다면 아이에게 작은 성공조차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자녀에게 진로를 위한 운동을 시키거나 시킬 계획이 있는 부모들은 아이의 체격이나 소질보다 운동을 할 때 정말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지를 반드시 살펴야 한다. 대개의 부모는 운동을 갓 시작한 자녀가 남보다 빠른 학습속도를 보이며 대회에서 수상이라도 하면 아이가 천부적인 소질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나아가 국가대표나 프로선수로 성공할 자녀의 모습을 성급하게 꿈꾸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앞으로 깊은 슬럼프를 겪어내야 하고 쓰디쓴 패배도 맛봐야 한다. 그러므로 신체조건과 운동 초기의 수상 경력보다는 아이가 운동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만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대선수로 성장할 충분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갖출 수 있다. 지금 당신의 자녀가 스포츠 꿈나무라고 생각한다면 체격, 운동능력 등 외적인 것에서 눈을 돌려 아이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적 동기의 크기에 관심을 기울일 때이다.

동서대 레포츠과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