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씨가 '맨부커상', 정확히는 '맨 부커 소설상'을 받아 화제가 됐다. 우선 수상자에게 축하할 일이다. 상은 소설가와 엇비슷한 나이를 먹은 중년의 문학상이다. 본래 영국의 북 트러스트 기금을 재원으로 출발해 부커 소설상이라 명명했다가 금융회사의 지원을 힘입자 그들을 기려 이런 이름이 생겨났다 한다.
맨부커상은 독자 의견을 수용해서 결정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트러스트라는 출발점 영향도 있겠지만 책을 읽는 사람이 다수이고 그들의 소양을 믿을 만하다는 실정이 몹시 부럽다. 근대성을 체현하는 소설 문학은 국제 경쟁 체제를 반영하기도 할 텐데 근대 민주주의를 세운 영국의 자신감이 선정 과정에도 담겼지 싶다.
소식을 전한 우리 언론의 분위기는 대부분 '기다리던 선물보따리가 도착했대!' 따위의 피할 수 없는 전례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노벨문학상처럼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이 아닌 탓일까, 아니면 하도 역동적인 한국 사회의 분위기 탓일까? 반짝하던 소식은 곧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생활의 중심을 글에 둔 사람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노릇이지만.
글쓰기라도 나는 번역에 치중한 사람이라, 수상 소식을 접하면서 소설가 한강 씨보다 정작 번역가 소식에 눈이 갔다. 작가와 상을 같이 받고 더구나 상금도 똑같이 받는다니! 세상에 이런 대접이. 데버러 스미스, 스물아홉 젊은 이국 번역가의 이름은 한동안 내 머리에 머물 공산이 크다. 본디 자국 문학을 공부한 영국인이고 한국어 6년 독학 끝에 얻은 결실이라 한다.
이번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 번역과 현실을 떠올렸다. 번역이란 말은 근대 일본에서 만든 외국어이다. 그런 연유인지 모르겠지만 번역이란 말을 누군가 '뒤치다'라는 우리말로 옮긴 적이 있다. 뒤치다, 뒤집는다는 뜻이지만 뒤척뒤척 따위의 말에도 보듯 뒤집는 일을 반복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아직 서지 못하고 뒤집기만 하는 아기를 뒤집어주는 일을 말한다.
뒤집기만 할 무렵 아기를 돌보는 일을 본디 '뒤치다꺼리'라고 한다. 뒤치다꺼리, 아기가 저질러 놓은 일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주물러 놓기. 한량없이 자애로운 어머니의 일이다. 어머니는 성가셔 하지도 않고 행여 아기가 불편하기라도 할 새라 신경 쓴다. 정말이지 뒤치는 일은 어머니의 마음이 없으면 안 되는 아름다운 일이 틀림없다.
경제인류학은 인류 사회의 작동 원리를 크게 두 가지로 제시한다. 하나는 증여이고 하나는 교환이다. 구분 기준은 간단하다. 대가가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대가가 없이 주기만 하는 것이 증여, 대가가 생기는 주고받음이 교환이다. 교환이 인간의 것이라면 증여는 신 또는 자연의 원리이다. 그래서 대가 없이 아기에 집중하는 어머니는 하늘이 낸 사람이다.
번역가는 아기 다루는 어머니처럼 텍스트를 어르고 달래고 밤잠 설쳐가며 뒤쳐준다. 흔히 창작을 출산의 고통이라고 하면 번역은 양육의 고통이라 할 만하다. 아무 대가 없이 양육의 고통을 감내할 번역가나 경우도 있겠지만 번역은 교환 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직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지만 그들을 위한 대가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럽 여러 나라에 사회 약자인 예술가를 보호하는 복지 제도가 마련되어 있고 번역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예술가처럼 베스트셀러 번역가야 복지가 필요 없을지 모르지만 번역가 대부분은 그들 사이에서도 형편이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도 주목할 것은 번역을 예술로 대접하는 그들의 태도이다.
뒤치다꺼리의 일반적이면서 두 번째 의미, 남이 성가셔 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대신 해주기. 생색나지 않는 이런 일은 흔히 천시의 대상이 되곤 한다. 열정페이, 약탈, 착취 같은 말은 이 경우에 적합하다. 알뜰살뜰 보살피는 일이라고 하기에 대접은 시원찮다 못해 분하기까지 하다. 이런 말을 지껄이고 다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알고 죽으니 원도 한도 없다." 이리 좋은 것을 모르고 죽을 사람들을 향한 사사로운 복수심, 이제 버렸다.
가난한 지상의 번역가에게 데버러 스미스는 강림한 천공의 선녀님이다. 선녀님도 영예로운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퍼뜩 든 생각이다. 혹시 한국 문학에 중독되어 정서도 옮았나? 독한 마음먹고 사명감을 채찍질하지 않으면 다음 번역을 기약할 수 없는 지상의 번역가에겐 너무 부러운 자리인데 말이다.
콘텐츠야, 콘텐츠야, 콘텐츠 타령이 너무 길어 지겨운 참이다. 대가라 할 수 없는 대가에 울음 우는 것도 지쳤다. 오월 이즈음이면 불러볼 만한 노래를 나지막이 부른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남김없이는 안 된다는 반발심이 삐죽 고개를 든다. 사랑이든, 명예든, 이름이든 무엇이든 다오. 나는 희생양이 되고 싶지 않으니 말이다. 각설하고 한강 씨의 맨부커상 수상을 다시 축하한다.
경성대 중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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