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에세이] 진심 /송상욱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입력 : 2016-10-20 19:40:12
| 본지 29면

며칠 전 나는 회사에 연차를 쓰고 가족과 단란한 휴가를 떠났다. 내가 회사를 옮긴 뒤 자리를 잡느라고 도통 집에서 보낸 시간이 없었고, 주말이면 더욱 바빠 가족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해 미안한 마음에 전국체전이 끝나고 내가 먼저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강원도 강릉으로 떠나 정말 재미있게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말이 아프다는 것이었다. 꽤 심각한 상태라 말이 생사를 넘나들고 있다는 전화였다.

왜 하필 오늘인가. 기분 좋게 가족과 맛있게 회를 먹으며 소주도 한잔하고 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은 이후로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를 옮긴 뒤 계속 바빠 신경을 못 쓴 탓에 주말이면 아이를 거의 혼자 봐야 했고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던 집사람도 여행하며 기분이 들떠 있었는데, 그런 전화를 받으니 표정이 매우 사나워졌다.

안 가고 싶었다. 말이 괜찮아지기를 빌고 또 빌었다. 내가 있는 곳도 멀리 떨어진 강릉인 데다가 술을 한잔했기 때문에 운전할 수도 없었고, 내가 가버리면 집사람과 아이가 돌아갈 차편도 없었다. 그리고 또 늦은 밤이었고, 내가 떠나버리면 집사람 혼자 강릉에서 돌도 안 된 아기를 데리고 서울까지 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회사에 있는 직원들에게 전화만 수십 번을 했다. 괜찮냐고. 말은 어떻냐고. 5분도 안 되어 전화를 하고 영상통화를 하며 고생하는 직원들을 더욱 괴롭혔다.

그렇게 1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다가 감독이라는 직책을 맡은 내가 말이 죽어가는데 고작 전화로 일을 보고받아야겠나 싶어서 무작정 옷을 갈아입었다. 집사람은 화를 냈다. 이렇게 가버리면 자기는 어떻게 하느냐고? 나 역시 짜증이 났다. 말이 죽어가는데 내가 여기서 놀고 있게 생겼느냐는 말을 뱉고는 부리나케 튀어나왔다. 짐이 산더미같이 쌓여있어도 알아서 잘 해왔던 집사람이니 믿고 나왔다.

몇십 만 원의 택시비를 들여서 가는 동안 말은 죽었다.

택시에서 허무하고 믿기지 않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화가 나 있던 집사람도 말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갔을 때는 이미 말의 몸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수도 없는 말을 떠나보냈지만, 어느 순간 하나 슬프지 않은 적이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날 밤, 나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술만 마셨다.

다음 날도 해가 중천이 되도록 나는 실무자들과 말의 죽음에 대해 처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는 전화를 한 통도 하지 못했다. 집사람은 강릉에서 아기를 보며 짐을 다 싸고 서울까지 3시간에 걸쳐 올라가는 동안 꽤 애를 먹었나 보다. 말이라면 나도 저리 가라 할 만큼 사랑하는데도 전화 한 통 없었음에 서운함과 화를 주체할 수 없었는지 나에게 전화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나는 가장으로서 그렇게 나와버리면 안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