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우리나라 18대 대통령이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수첩공주로 불리고, 불통의 이미지가 강하다.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이 지금까지의 그 어느 대통령과도 다르다. 장관도 의원도 따로 독대하는 법이 없고, 7시간씩 증발하기도 하며, 문고리 삼인방을 향한 비난에는 철통 비호로 맞선다.
얼마 전까지 콘크리트 지지율을 자랑했는데, 최순실의 파문으로 끝내 10%대로 떨어졌다. 핵심 지지층이었던 60대 이상, 보수층, 대구·경북, 부산·경남, 새누리당 지지층의 이탈 폭이 가장 컸다. 다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기분이었던가 보다.
이 시점에 대통령의 심정은 어떨지 자못 궁금하다. 그래도 해운대 벡스코에서 있었던 '제4회 대한민국 지방자치박람회' 개막식에는 참석했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기차는 달려야 한다. 해사하게 웃는 모습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대통령이라 배포가 다른가 보다.
혹시 이 사안의 중대성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사과문의 내용 때문이다. 시국을 흔드는 문제에 대해 사과하면서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각오가 전혀 없었다. 그저 감성에 호소하는 일방적인 해명이고 변명이었다. 화나고 실망스러운 국민의 마음 따위는 각자 알아서 챙기라는 것 같았다. 그것도 2분이 채 되지 않는 녹화방송이었다.
그걸 보면서 어쩌면 박 대통령은 이 문제를 그 정도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원래 사랑을 많이 받은 사람은 그 사랑이 영원할 거로 생각한다. 완전히 잃기 전에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대통령이 자신이 챙겨야 하는 국정을 아무 권한도 없는 개인에게 넘겨주고, 그 로봇 노릇을 한 것에 대해 그처럼 자각 없이 얘기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는 내년이면 구순을 바라보는 내 시어른께도 아주 심각하게 여겨진다. 11년이 모자라는 한 세기를 살아오면서 나라가 위험한 지경에 이른 걸 여러 번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다.
박 대통령은 당신이 지난 대선 때, 이 나라를 이끌고 가기에 최고 적임자라는 확신을 갖고 찍어준 후보다. 일찍이 부모를 비명에 보내고도 꿋꿋하게 잘 이겨내고, 대통령 후보에까지 오른 그 의지와 기개를 믿었다. 그녀는 세상에 둘뿐인 동생들과도 거리를 두고 있어서 대통령 친인척 비리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이 한결같이 친·인척 비리로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는 걸 본 뒤여서 그것만 안 해도 좋겠다 싶었다. 국가의 수장이 국민 앞에 머리를 숙이고 나면 권위가 사라져 국정을 제대로 수행하기가 어렵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외환위기를 겪었다. 아들의 문제로 사과한 직후였다. 대통령의 권능이 약해지니 위기를 제대로 수습할 체제가 작동할 수 없었다. 그때 온 국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냈던가.
그런데 어처구니없게 박 대통령도 국민 앞에 머리를 숙였다. 이번에 등장한 여인은 대통령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한 정도가 아니다. 가만히 앉아 중요한 국정 문서들을 받아보면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꿰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대통령은 중요 행사 때마다 그녀가 지정해준 옷을 입고 움직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박 대통령은 어째서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들은 다 젖혀두고 그런 사조직을 운영하면서 스스로 의혹을 만드는가.
도대체 그 여인의 무엇이 대통령의 의식을 그토록 사로잡고 있었단 말인가. 이 정권 들어 헬조선이라는 말이 나돌고, 수저 타령이 난무하더니 경제마저 마이너스 성장이네 하니 하루하루 지내는 것이 자갈밭이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사회 분위기상으로나 어느 한 가지 편안하고 넉넉한 구석이 없으니 그게 꼭 당신이 투표를 잘못하여 그런 것만 같아 시어른께서는 요즘 자식에게도, 손주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가뜩이나 국내외로 시국이 어수선한데 이런 일로 불안이 증폭되면 위험해진다. 하루빨리 이 난국을 수습해야 한다. 대통령께선 비선에 대한 애정을 버리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인사가 만사라고 했다. 어떤 조직이든 사람을 잘 쓰면 발전하고 잘못 쓰면 망한다. 어차피 대통령이 혼자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다. 지금이라도 인재들을 널리 기용하여 적재적소에 잘 포진하면 대통령의 부족한 점을 보완할 수 있다. 보통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레임덕에 빠진다. 그래서 지금 이 사태가 더 우려스럽다. 부디 남은 임기 동안 지금까지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밤낮을 새 가며 고심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안도의 숨을 쉴 수 있다.
그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녀는 오천 만 국민을 대표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며, 우리의 얼굴이고, 우리의 자존심이고, 우리의 품격인 것이다. 그러니 제발 좀 국민을 생각해서 행동해주시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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