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스페인 검찰은 가브리엘 그라나도스라는 우편배달부에게 무려 38만4912년이라는 징역형을 구형했다. 그의 죄목은 4000건의 우편물을 배달하지 않았다는 것. 우편물 1개에 9년씩인 형량을 매긴 셈이다. 이는 구형이나 선고를 통틀어 여지껏 전 세계에서 최고의 형량으로 꼽힌다. 하지만 그라나도스는 이후 법원에서 징역 14년2월을 선고받았다.

구형이 아닌 최고 형량의 선고를 받은 인물은 태국의 차모이 티피아소라는 여성 사업가. 1989년 다단계사업을 통해 1만6000여 명에게 사기를 쳐 2300억 원을 빼돌린 혐의로 티피아소에게 선고된 형량은 14만1708년이었다. 티피아소의 최장기간 형량은 기네스북에 등재되기까지 했지만 실제로는 8년가량만 복역하고 출소했다.

이처럼 긴 유기징역형이 가능한 것은 이들 나라가 누적주의 원칙을 적용하기 때문. 여러 범죄를 저지를 경우 각 범죄에 정한 형을 모두 합쳐 처벌하는 것이다. 여러 죄를 저질러도 무거운 죄를 골라 2분의 1까지 가중해서 처벌하는 우리나라 같은 가중주의 원칙과는 구별된다. 앞선 두 사람의 경우 누적주의 원칙을 적용했다고 하나 중범죄가 아닌 만큼 사실상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하지만 흉악범 등 중범죄자일 경우는 상황이 달라진다. 역시 누적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수백~수천 년의 징역형이 자주 선고된다. 1994년 유아 강간 혐의로 기소된 찰스 스콧 로빈슨에게는 3만 년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총 6건의 유아 강간에 대해 1건에 5000년씩이다. 사실상의 종신형이다.

이뿐 아니라 미국에서는 징역형에 종신형까지 더해지는 경우도 있다. 2012년 영화관에서 총을 난사, 관람객 12명을 살해하고 70명을 다치게 한 제임스 홈스에겐 12번의 종신형과 징역 3318년이 선고됐다. 사망한 12명 몫으로 12번의 종신형에다 부상자 70명의 살인미수 혐의로 3312년, 폭발물 소지죄로 6년이 더해진 것.

미국과는 법 체계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잘 쓰지 않는 종신형이란 말이 등장했다. 최순실 씨가 국회의 구치소 청문회에서 몇 년 형을 받을 거라고 예상하느냐는 질문에 "종신형을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 답했다. 정작 검찰이나 구치소 청문회에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해놓고 종신형을 각오한다니 뜬금없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금 국민 정서상으로는 단 한 번이 아니라 미국처럼 몇 번이나 종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장재건 논설위원 jj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