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소녀상 사건으로 공무원의 마음도 크게 다쳤습니다."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0시 박삼석 부산 동구청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시민단체가 일본영사관 후문에 세운 평화의 소녀상을 강제 철거한 데 따른 입장을 표명하는 자리였다.

막상 기자회견을 시작한 박 구청장은 입장을 변명하느라 바빴다. 그는 "소녀상 설치는 위법이다. 그동안 소녀상 갈등을 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정작 부산시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소녀상 설치 허가 여부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다. 그는 "여러분이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 입장을 생각해서 일을 해주시고 저도 여러분처럼 입장이 있다는 말씀을 드린다"는 말로 기자회견을 끝마쳤다.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도 박 구청장의 태도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1인 시위가 진행되는 일본영사관 앞 인도에 트럭을 주차해놓은 것부터 소녀상 강제철거와 소녀상이 옮겨진 위치까지 보고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와 결재가 생명인 공무원 조직에서 최고 결정권자의 지시 없이 이런 일을 벌였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박 구청장은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심지어 한 시민단체 회원이 '동구가 소녀상 설치를 불허해 많은 시민이 상처를 받았다'고 항의성 질의를 하자 "우리 공무원들 역시 상처를 받았다"고 답변했다.

박 구청장은 '소녀상 설치를 허가하지 않겠다는 뜻이냐'는 질문이 쏟아지자 마지못해 "시민사회가 계속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원해 더는 막을 길이 없다. 외교적인 문제도 있지만 자치단체장으로서 솔직히 감당하기 힘들다"면서 소녀상 설치를 '묵인'하겠다고 밝혔다.

박 구청장은 단순히 동구 공무원의 수장이 아니다. 동구 주민의 대표다. 박 구청장은 "공무원의 마음도 다쳤다"는 말로 스스로를 주민 대표가 아니라 공무원의 수장으로 가둬 버렸다. 이미 소녀상 철거에 동원된 공무원의 신상이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박 구청장을 향한 불만이 쏟아졌다. 그는 동구 주민과 부산시민의 신망마저 잃은 셈이 됐다.

소녀상 설치 논란을 대하는 박 구청장의 행보는 리더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게 했다. 소녀상 설치 문제로 구청 업무가 마비되고 시민의 분노가 들끓던 와중에도 박 구청장은 기자회견 후 구청 내부행사인 '아듀 2016, 해피 2017' 행사에 참석하는 여유를 보였다. 여전히 그에겐 부산 시민들보다 공무원 달래기가 더 중요했을까. 정작 상처 받은 사람이 누구였는지 박 구청장은 지금도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회1부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