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다. 부산을 연고로 하는 프로스포츠구단 감독 세 명과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부산 아이파크 최영준 감독과 롯데 자이언츠 조원우 감독, 부산 kt 조동현 감독 세 명 모두 공교롭게도 새로 지휘봉을 잡은 초보감독이었다. 첫발을 뗀 사령탑들이 서로 격려하고 새 시즌에 대한 기대와 열정을 나누는 화기애애한 자리였다. 선수 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공유하고 고민도 털어놓았다. 기자가 초보감독에 대한 팬들의 우려를 전하자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는 말을 하며 헤어졌다.

한 해가 지났다. 롯데는 뒷심 부족으로 8위에 그치며 4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했다. '888577'의 암흑기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졌다. 구단 사장이 물러났다. 축구는 더 처참했다. 2부 리그에서도 시즌 중반까지 하위권을 맴돌다 하반기 대반전으로 승격 플레이오프에 턱걸이했다. 거기까지였다. 부산은 첫판에서 강원FC에 패하며 1부 리그 승격의 꿈을 접었다. 구단 사장과 최영준 감독이 함께 물러났다. 농구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시즌 7위에 그쳤던 부산 kt는 이번 2016-2017시즌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단장이 야구단으로 자리를 옮긴 후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11연패를 당하는 등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부산 연고 프로구단들이 동반 부진한 이유가 뭘까. 투자가 적었던 것도 아니다. 롯데는 지난해 뒷문을 지킬 'YS라인' 윤길현과 손승락을 영입하는 등 FA선수들에게 100억 원이 넘는 돈을 들였다. 부산 아이파크도 구단주인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100억 원의 예산을 지원했다. 제법 이름난 공격수들을 끌어모아 '레알 부산'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성적은 자금 지원 순이 아니었다.

단체경기는 전력의 칠팔 할이 조직력이다. 지난 시즌 K리그 1부리그로 승격한 강원FC나 대구FC의 경우 무명의 선수가 대부분이다. 이름값 있는 한두 명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투수놀음이라 일컫는 야구도 수비나 작전 수행 능력 등 조직력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좋은 성적을 기대하기 힘들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선수 육성시스템이다. 주전의 공백을 메울 후보 선수 수준이 그 팀의 수준을 말해준다. NC 다이노스가 전통이 깊어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아니다. 넥센 히어로즈에 유명 선수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일부 롯데 팬이 시즌이 끝난 후 김경문 감독이나 염경엽 감독 영입을 요구한 것도 이런 연유다.

다시 한 해가 시작됐다. 올해 롯데와 부산 두 구단은 약속이나 한 듯 지갑을 닫았다. 영입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정한 듯하다. 롯데는 일단 황재균 잡기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선수 추가 영입은 그다음이다. 축구는 지난해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았다. 야심 찬 영입으로 선수단 3분의 2를 바꿨지만, 조직력에 문제를 드러냈다. 올해는 눈에 띄는 영입이 없다. 울산으로 임대 갔던 국가대표 스트라이커 이정협이 돌아온 정도다. 해외로 떠나던 전지훈련도 순천과 제주로 바꿨다.

부산은 새 사령탑에 조진호 감독을 데려왔다. 그가 부임하면서 공교롭게도 올해 부산 프로구단 세 곳을 모두 조 씨 감독이 맡게 됐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팬들은 부산 스포츠에 '조 트리오' 시대가 열렸다고 재미있어한다.

롯데의 조원우 감독은 올해가 2년 계약의 마지막 해다. 성적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할 것이다. 지난해 초보감독이어서 시행착오가 허용됐다면 올해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지론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조 감독이 어떤 색깔을 보여줄지 지켜보자. 부산 조진호 감독에 대한 축구팬들의 기대는 상당하다. 상무를 이끌고 팀을 승격시킨 경험이 있고 그 팀을 1부 리그 상위 스플릿으로 이끈 능력도 있다. 조 감독이 선수단과의 상견례에서 던진 첫 마디는 "다들 머리 짧게 잘라라"였다고 한다. 마음가짐부터 달리하라는 의미다. 지금 '조 트리오' 중 가장 안타까운 이는 조동현 감독이다. 선수나 감독 시절을 통틀어 가장 혹독한 시련기일 것이다. 어려움을 겪지만 조 감독은 반등을 자신하며 포기는 없다고 외치고 있다.

부산은 열정적인 도시다. 응원하는 구단의 성적 부진으로 팬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상대적으로 크다.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걸기에는 올 시즌도 못내 미심쩍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팬들은 늘 그래왔듯, 입으로는 욕하면서 경기장을 또 찾을 것이다.

올해만큼은 그들의 욕심을 좀 채워주자. 사직구장이 떠나갈 듯 울려 퍼지는 부산갈매기 노래를 듣고 싶다. '최강 부산' 함성이 아시아드 주경기장을 가득 메우길 희망한다. 올가을에는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롯데와 부산 때문에 운동장 일대 교통이 마비됐다는 기사를 보고 싶다. 탄핵이니 10년 주기 경제위기니 하는 우울한 뉴스가 가득한 세상, 이래저래 위안받을 일 없는 부산 팬들에게 그나마 스포츠가 속 시원한 선물을 줬으면 좋겠다. '조 트리오' 파이팅!

편집국 부국장 dol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