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의 변화를 예측하는 이론 중에 '힘의 주기론'이 있다. 강대국 간의 역학관계가 변하면 힘의 공백이 생기면서, 패권을 유지하려는 국가와 패권을 새로이 장악하려는 국가 간에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고 심지어는 패권전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고대 아테네의 패권에 스파르타가 도전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나 20세기 초 영국과 독일 간의 패권전쟁이었던 1, 2차 세계대전이 좋은 실례이다. 국제사회 역학관계가 급속히 변하면 불확실성이 높아져 자국의 이익만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게 되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게 된다.

힘의 주기론은 또한 패권경쟁의 하나의 원인으로 국내 사회의 혼돈과 불안을 지목한다. 찰스 도란은 역사적으로 국제질서의 주요 변환기에는 주요 국가들 모두 상대적 힘의 역학관계가 급속히 변화하는 임계점을 통과하고 있었으며, 국내 리더십 교체와 의사결정과정이 비합리적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고 주장한다. 세계 1차 대전 이후 영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독일이 부상하면서 영국이 추구해온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붕괴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요 국가들은 보호무역을 선택하였다. 결국 세계무역은 붕괴되었고 외환시장은 극심한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으며 세계경제는 대공황 속으로 떨어졌다. 불확실한 국제정세 속에서 히틀러는 극단주의인 나치즘으로 독일인들의 성난 민심을 패권주의 도구로 삼아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두 가지의 작용과 반작용이 온 인류에게 비극을 가져온 것이다. 첫째는 국제질서의 극심한 불확실성과 국내 정치의 혼란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국제 상황이 국내 불안과 혼란을 증폭시켰고, 국내 불안이 다시 국제질서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작금의 상황도 비슷하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세계 주요 국가들은 임계점을 지나고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취임사에서 그는 미국 우선주의를 주창하면서 사실상 역사와의 단절을 암시했다. 미국 외교정책 관점에서 보면 보호무역주의, 신고립주의, 현실주의를 표방하는 그의 대외정책은 세계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추구해온 자유주의 질서와의 단절이다.

얼마 전 다보스 포럼에서 시진핑은 트럼프 외교정책을 우려하면서 자유무역을 주장했다. 그동안 미국이 중국의 불공정 무역을 줄기차게 비난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실로 불확실성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어떠한가. 시진핑은 국제협력을 확언하면서도 중화민족부흥, 중국의 위상에 맞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식 세계관을 투사하고 있다. 일본 역시 불확실성의 요인이다. 아베 정권 이후 일본은 보수주의 대외정책을 추진하면서, 군사력 강화,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역할 확대 및 위상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러시아의 푸틴은 민족주의 기치 아래 팽창주의를 추진하고 있다. EU 역시 불확실하다. 영국의 브렉시트로 인해 유럽경제협력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두 번째는 정치와 민심의 작용 반작용이다. 국제사회의 역학관계가 변화하는 배경에는 급부상하는 국가가 있다. 세계정치가 어지럽고 경제가 어려울 때는 국가 간 불신이 깊어진다. 한 국가의 위상이 높아질 때 다른 국가의 위상은 추락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다. 한 국가의 부의 증가가 다른 국가의 상대적 빈곤으로 인식되고 분배의 문제가 부상한다. 국가의 위상이 추락할 때, 부의 분배가 정의롭지 못할 때 분노의 정치가 나타난다. 국민은 정치리더십과 국제사회에 분노를 표출한다. 정치인은 그 분노를 정치 도구화한다.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에 공명했다. 아베는 일본 국민의 좌절감과 분노를 보았다. 시진핑은 국제사회의 중국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을 중화민족에 대한 모멸감으로 정치화하고 있다. 푸틴 역시 제국주의 숙취에 빠져 있는 러시아 국민의 좌절감을 정치 자산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불안과 혼돈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가? 리더십이다. 국제질서의 흐름을 정확히 보고, 국민의 분노에 공감하는 혜안과 온정의 리더십이다. 외부의 불확실성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하지 않고, 국민의 마음을 치유해 주는 리더십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지혜다. 정치는 민심을 활용하나, 민심은 정치를 채색한다. 올해는 대선의 해이다. 내우외환(內憂外患), 근우원려(近憂遠慮)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길은 외부에서 오는 혼돈과 내부의 분노를 잠재울 우리 국민의 현명한 선택이다.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그것을 할 리더십이 누구인가를 잘 생각해보자.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