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늙어가듯 우리가 사는 도시도 점차 늙어간다. 사람처럼 도시가 쇠약해지면 전체적으로 활력을 잃게 된다. 시민들의 주거와 삶의 질도 함께 떨어질 터이다. 그래서 도시재생은 세계적인 화두다. 국내외 여러 도시가 재생 프로젝트에 힘을 쏟는 추세다.

도시재생의 지향점은 살기 좋은 공동체 조성에 있다. 그럼 '살기 좋은 도시'의 조건은 무엇인가. 캐나다의 저명한 도시계획전문가이자 '행복도시'의 저자 찰스 몽고메리는 '걷기 좋은 도시가 살기 좋고 행복한 도시'라고 알기 쉽게 정의했다. 국내 어느 학자는 '걸을 수 있고,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들면 도시가 자연스럽게 재생된다'고 강조한다. 안전하고 편리한 보행길을 많이 갖추면 도시가 살아난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살기 좋기로 유명한 도시들도 쾌적한 보행환경이란 공통점을 지녔다. 리버벌 시티(livable city)는 곧 워크블(walkable) 시티인 셈이다. 호주의 멜버른, 캐나다의 벤쿠버와 토론토, 오스트리아의 빈, 미국의 시카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 등이 그들이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이름난 덴마크의 코펜하겐 도심은 보행자 천국이다. 시내 중심가 1.2㎞는 아예 보행전용 공간으로, 유럽에서 가장 긴 '차 없는 거리'다.

걷기 좋은 도시의 요체는 '연결'이다.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펴낸 유현준 건축가는 이렇게 표현했다. "살기 좋고 바람직한 도시는 공간과 공간이 단절되지 않고 이어진 것이다." 만남과 소통이 원활한 도시가 되려면 걷기 좋아야 한다는 얘기다. 초고층 건물과 차도를 많이 건설한다고 해서 살기 좋은 도시일 수는 없다. 중동 도시들이 그런 모양새다. 걷기 편리하고 매력적인 거리를 만든다는 건 단순히 물리적 환경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걷는 사람이 늘어나면 거리 상가에 활기가 돌고, 그로 인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사회문화적 재생에도 도움을 준다.

이런 점에서 영국 제2의 도시 버밍엄은 타산지석이다. 1970년대부터 쇠락의 길을 걷던 버밍엄은 보행중심으로 도시체질을 바꾸면서 문화·쇼핑 중심지로 되살아났다. 보행도시로 탈바꿈한 미국 뉴욕의 맨해튼 역시 도로체계를 혁신하며 보행자 공간을 대거 조성했다. 게다가 뉴욕 시는 적은 예산과 시설로도 도시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근래 서울의 '핫 플레이스'들도 차 없이 걸어 다녀야 하는 동네이다.

그렇다면 부산은 걷기 좋은 도시일까. 아직은 세계적인 수준과 거리가 멀고, 국내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지난해 10월 국책연구기관(국토연구원 부설)인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내놓은 평가보고서는 부산의 보행여건을 비춰준다. 이 기관은 녹색교통 활성화(보행·자전거 통행수단 분담률, 1인당 보행·자전거 통행시간), 보행안전(사고율, 사고 심각도) 등 2개 지수로 전국 광역자치단체들의 보행정책성과 순위를 매겼다. 그 결과, 부산시는 녹색교통 활성화에서 12위, 보행안전에서는 17위로 꼴찌였다. 두 지수의 종합점수에서도 최하위에 머물렀다.

부산시는 보행 친화도시를 표방해왔다. 이를 위해 관련 환경개선사업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성과는 미흡하고 시민들이 몸으로 체감할 정도로 효과적이지 않은 것 같다. 넓은 차도에 비해 좁고 불편한 인도가 부산 거리의 여전한 모습이다. 보행로를 대충 갖춰놓거나 차도와 인도의 구분마저 없어 위험한 거리도 산재해 있다. 원도심의 보행여건은 더욱 열악한 형편이다.

보행도시가 되기 위해서는 발상의 대전환과 과감한 정책, 그리고 실행이 이뤄져야 하겠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의 제언은 그 점에서 새겨들을 만하다. 우선, 기존 도시·교통정책의 구조적 변화 없는 '틈새시장'으로서의 보행정책은 성과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보행자와 차량 사이의 실질적인 균형을 고려하는 정책 수정이 이뤄져야 한다. 말로만 사람중심을 내세울 게 아니라 구체적인 보행자료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개선정책이 진행돼야 하겠다. 특히 보행정책을 일부 개별 부서에 국한시키지 않고 시정 전반의 핵심적 가치와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해외 선진도시에서는 걷기 좋은 환경 만들기가 대세다. 정책 패러다임을 이미 그쪽으로 전환했다. 보행중심이 도시경쟁력과 연결된다는 인식에서다. 서울시의 경우 '걷는 도시 서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역 옛 고가도로(보행전용·공원화) 주변과 종로 일대를 보행특구로까지 지정할 방침이다. 지난달 미국 뉴욕타임스는 부산을 '저평가된 도시'로 표현하며 '2017년 가볼 만한 세계 52곳' 중 48번째에 올려놔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내용을 보면, 과거 부속공장 밀집지에서 예술공간으로 변모한 전포동 카페거리를 소개한 것이다. 부산이 이색장소에 대한 일회성 방문 도시가 아니라 머물고 싶고 살기 좋은 도시가 되려면 보행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요소다.

구시영 선임기자 겸 ㈔걷고싶은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상임이사 ksyo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