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졸업식이 있었다. 대학생활의 여정을 마치고 졸업하는 친구들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지금부터 학생들이 직면하고 마주해야 할 세상은 녹록하고 낙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는 혼돈 상태에 빠져 있고, 경제는 파산 직전에 이르렀으며, 청년 실업률은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선생이 사회 진출의 달콤한 전망만을 제시할 수 있겠는가.
최근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고달픈 삶을 잘 묘사하고 있는 소설이 나와 주목을 끈다. 이정임 작가가 데뷔 10년 만에 출간한 '손잡고 허밍'이 그것이다. 아홉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은 경쟁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기 재능을 발명해야 하는 비정규화된 청춘들의 성장 드라마를 담고 있다. 작품집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은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으나, 핵심 소재는 동년배 청년들의 삶의 양상이다. 물론 '손잡고 허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등 청년'의 성장 모델이 아니라, 사회 진출에 실패하거나 취업에서 탈락한 이들의 절박한 모습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작품은 사회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는 학생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지닌 취업준비생 '나'(이 군)의 힘겨운 사회 진출 여정을 그리고 있다. '나'는 취업 준비 때문에 대학 졸업을 유예한 채 서른을 넘긴 휴학생이다. 그에게는 이 군, 백수, 취준생, 편의점 알바라는 다양한 이름이 기입되어 있지만, 그 어느 것도 '나'를 안정적인 삶의 영토로 진입시키는 데는 도움을 주지 못한다.
'나'가 처해 있는 취약한 삶의 알레고리는 '당신은 어느 별에서 오셨습니까?'라는 작품을 경유할 때 더욱 명확해진다. 이정임 작가는 청년 취준생 캐릭터를 마치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이 속해 있는 사회 어느 곳에서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소속되거나 기능하지 못하는 '셈 바깥의 존재'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정치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국민국가를 유지하고 운영하는 내부 논리에 덧셈 되지 못하는 이들을 '내쫓긴 자(outcast)', 혹은 우리 사회의 공적 시스템 속에 덧셈 되지 못한 이들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의 주인공이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의심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시골에서 자란 주인공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성공의 첫 열쇠"라고 생각하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런 캐릭터 설정은 자기 몫과 자리를 부여받지 못한 청년 취준생들의 비정주성과 불안정성을 감각하게 하는 소설적 장치이다. '나'는 대학 입학 때 '오목한 좌변기'가 있는 원룸으로 입주했다. 하지만 취업 준비로 휴학이 길어지면서,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룸의 보증금을 빼서 '재래식 변소'를 쓰는 산동네 쪽방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원룸에서 쪽방으로의 이동'은 물리적 주거 공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 취준생에게 가해지는 열악한 생의 조건을 환기하고 상징하는 공간적 배경이 된다.
결국, 쪽방에서의 삶은 파국의 위기를 불러온다. '나'는 우연히 옆집에서 벌어지는 노름판에서 몇 차례 담배 심부름을 하게 되는데, 그 일이 꼬이면서 서류전형에 합격한 커피회사 면접일 아침에 경찰서로 붙잡혀 가는 위기를 겪게 된다. 점점 면접 시간이 다가오고, '나'는 노름판 심부름 값에 현혹된 자신을 질책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한다. 그 순간 늘 찌질하고 무능력하다고 생각한 세 번째 쪽방 아저씨가 나타나 극적으로 경찰서에서 풀려나오게 되고, 주머니를 다 털어 택시비까지 건네준 아저씨 덕분에 '나'는 무사히 면접을 마칠 수 있게 된다.
쪽방으로 돌아온 '나'는 면접 참가비로 받은 이만 원으로 아저씨에게 따뜻한 음식을 만들어준다. 그날 저녁 정지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장(腸)에서 신호가 온다. '나'는 너무나도 피하고 싶었던 쪽방의 재래식 변소에 앉아 "엉덩이에 힘"을 준다. 그 순간, 화장실 안으로 환한 가로등 불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나'는 보잘것없고 쓸모없는 똥무지에서 반짝이는 '빛'을 발견한다. 이 작품의 에필로그가 함의하는 바는 분명하다. 누구나 벗어나고 싶은 삶과 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 속에도 분명 당신이 찾지 못한 '반짝반짝, 빛나는' 희망의 자원이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이정임의 작품은 동시대 청년들의 처절한 생존 고민과 함께, 비루한 현실 속에서도 '사람-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균형감각 있게 잘 보여주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교문을 돌아나가는 학생들의 뒷모습이 겹쳐 보인다. 하지만 달리해줄 말이 없는 못난 선생은 먹먹한 가슴을 누르며 소설 속 문장을 소곤거릴 뿐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배변 활동은 멈출 수 없다. 그러니 달빛 받아 반짝이는 내 삶들을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것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별처럼."
부산외대 한국어문화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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