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프로야구가 이번 주 개막한다. 야구에 죽고 야구에 사는 골수팬들은 이를 손꼽아 기다렸을 터다. 이때쯤이면 각 구단 감독들은 개막전 선발투수 낙점에 골머리를 앓는다. 실력이 빼어나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명실공히 팀을 대표하는 선수가 개막 무대를 장식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려서다. 팬들의 기대치도 크다. 홈팀의 간판스타가 첫 경기에서 상대팀에게 몰매를 맞는다면 감독의 용병술에 문제가 있었다는 등 이런저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중요도로 따지면 어디 프로야구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만은 정치권도 개막을 앞두고 있다. 대선일인 5월 9일까지는 40여 일밖에 남지 않았다. 당연히 각 정당도 대표선수 선발에 골몰한다. 정당별로 한창 경선이 진행 중이니 조만간 최종 주자들이 결정된다. 이전에 비해 국민들의 눈이 정당의 경선에까지 쏠리는 것은 현실과 무관치 않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하면서 유권자의 선택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19대 대선 때는 투표율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치러진 대선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때는 13대(1987년)다. 무려 89.2%였다. 쉽게 말해 유권자 열사람 가운데 아홉 사람이 투표소에 간 셈이다. 투표율이 이처럼 높았던 데는 그 해 있었던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대통령 직선제의 영향이 컸다. 2017년 대선은 촛불집회로 탄핵이 이뤄진 해에 열린다. 우리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이들과 태극기 부대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이 앞다퉈 권리행사를 할 것이 확실하다. 이럴 경우 19대 대선 투표율은 90%를 뛰어넘을 수 있다.
투표율은 그렇다 치더라도 걱정되는 바는 과연 역량 있는 인물들이 출발선상에 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지금 주요 정당의 대선 예비후보들은 조금 말을 보태자면 차고 넘친다. 군소정당이나 무소속까지 포함하면 숫자는 더 많아진다. 이들은 너도나도 내가 적임자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자세한 면면을 들여다보면 실소가 나오는 인물들도 적지 않다. 그동안의 행적으로 미뤄볼 때 도저히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되는 후보들도 눈에 띈다. 오죽했으면 어떤 당에서는 내부에서조차 '풍요 속 빈곤'이라는 자조가 나왔겠는가.
스스로도 자격미달임을 알만한 이들이 대선 후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은 복잡한 속셈이 있어서다. 누구에게는 차기 대선을 위한 포석일 테고 혹자에게는 지방선거나 국회의원 선거를 향한 인지도 제고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또 경선을 통해 향후 있을 당내 자리싸움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확률을 높이는 것도 가능하다. 사실 유권자에게 얼굴을 알리기에는 이만한 게 없다. 그러니 출마자들도 각 당마다 억 단위를 넘는 예비후보 경선 등록비용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당내 지지도가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낸 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민주사회에서 출마는 자유의지에 달렸다. 평소 품고 있던 생각을 현실과 접목해보고 싶은 것은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덕목이다. 아무도 막지 않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대통령직은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없다. 이 실험을 했다가 여의치 않다고 다른 실험을 할 정도로 한가한 자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오랫동안 가다듬고 구상한 집권 후 전략이 없다면 개인의 천성 여부와 관계없이 대통력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 준비 안 된 대통령이 불러온 과오는 이번 탄핵을 통해 충분히 증명됐다. 대통령의 확고한 소신과 철학이 부족하면 이른바 비선세력에 의해 국정이 휘둘리는 건 당연지사다.
19대 대선이 우리의 앞날을 가름할 소중한 기회라는 건 모두가 아는 바다. 전임 지도자의 무능을 국민의 힘으로 심판한 만큼 차기 대통령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특히 탄핵과정에서 찬반세력 간 불거진 극심한 민심분열을 보듬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도 있다. 이 틈이 메워지지 않으면 차기 정권도 임기 내내 불안정한 행보를 계속해야 한다. 사소한 잘못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례를 들어 중도하차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빗발칠 것이 분명하다. 여야를 떠나 포용력 있는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높아지는 이유다.
상식이 통하는 정당은 당연히 후보들의 맑고 탁함을 걸러낼 자정기능이 있을 게다. 공정한 룰이 적용됐다면 유권자들은 어느 정당에서 어떤 인물이 최종 후보로 결정되더라도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이에 앞서 숭고한 대통력직을 수행할 능력이 부족하다 싶으면 과감히 물러나는 것이 옳다. 경선을 보는 국민은 함량이 턱없이 부족한 인물들의 등장에 경악하고 있다. 자신의 깜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지 못하는 이들의 민낯을 대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고역이다. 누가 뭐래도 나밖에 없다며 자신만만한 그들에게 묻고 싶다. 유권자들이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는지.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