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6일 오전 일본의 히로시마 상공에 '에놀라 게이'라는 이름이 붙은 미군의 B-29 폭격기가 나타났다. 8시15분께 B-29에서 한 발의 폭탄이 떨어졌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원자폭탄이 사용되는 비극의 순간이었다. 사흘 뒤인 8월 9일 오전 11시2분에는 또 다른 폭격기가 나가사키에 다시 한 발의 폭탄을 투하했다.

결과는 끔찍했다. 단 두 번의 폭격으로 수십 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그때나 지금이나 원폭이 일본의 조기 항복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일본군의 전력이 거의 궤멸상태였음을 고려할 때 이처럼 무시무시한 원폭을 꼭 사용해야 했는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역사학자도 적지 않다.

역설적인 것은 피폭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 살상력과 달리 전혀 무섭지 않은 폭탄의 이름이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은 '리틀 보이(Little boy)', 나가사키를 강타한 원폭은 '팻 맨(Fat man)'이란 애칭으로 불렸다. 일부에서는 리틀 보이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팻 맨은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의 별명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강대국이 개발했던 폭탄이 모두 이처럼 다소 순수한 이름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1년 소련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수소폭탄을 만들면서 '폭탄의 제왕(차르 봄바)'이라 명명했다. 여기에는 당시까지 지구상에서 제조된 폭탄 가운데 가장 위력이 세다는 소련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차르 봄바의 위력은 히로시마 원폭보다 3800배나 컸다.

최근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내 이슬람국가(IS) 근거지에 떨어뜨린 GBU-43은 '폭탄의 어머니(Mother of All Bombs)'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2003년 3월 첫 실험에 성공했다. 핵무기를 제외한 재래식 폭탄 가운데 가장 폭발력이 크다. 그래서 일부 군사전문가는 GBU-43을 '준핵폭탄'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GBU-43을 사용한 데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무력시위의 뜻도 담긴 것으로 여겨진다.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나 민족은 아마 지구상에 거의 없을 터다. 그런데도 대규모 살상 무기 개발은 여기저기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싸한 별칭으로 포장해도 폭탄은 폭탄일 뿐이다. 위력이 클수록 인류의 공멸도 가까워진다. 그 이름이 근엄한 제왕이든, 인자한 어머니든, 귀여운 어린이든 간에.

염창현 논설위원 haore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