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18대 대선은 역대 대선 중 가장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선거였다. 당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마지막까지 피말리는 경쟁을 펼쳤다. 투표 당일 출구 조사가 발표되기 직전에는 '문재인 당선'이라는 '가짜 뉴스'가 구체적인 득표율과 함께 SNS에 나돌기도 했다. 막상 투표함을 여니 박근혜가 1557만 표(51.55%)를 얻어 1469만 표(48.02%)에 그친 문재인을 108만 표차로 누르고 당선됐다.
흥미로운 것은 양 후보의 지역별 득표수다. 당시 전체 유권자 수는 4050만 명쯤 된다. 전체 유권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도권에서 두 사람의 표차는 불과 6만 표(문 후보 우위)에 그쳤다. 호남에서 문재인이 몰표로 251만 표나 더 챙겼지만 대구·경북(TK)과 충청에서 비슷한 양의 표를 잃었다. 결국 부울경(PK)에서 박근혜가 문재인보다 더 얻은 111만 표가 승부를 갈랐다. 만약 부울경이 없었다면 문재인이 3만 표 이긴 선거였다. PK가 확실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 것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지난해 가을부터 불과 6개월이 지났건만 어떤 이는 "근 10년 치 굵직한 현대사를 경험한 것 같다"고 한다. 한마디로 숨 가쁜 일정이었다. 혼돈의 대한민국은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과 구속이라는 비극적인 일정을 마무리 짓고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제19대 대통령선거라는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다.
처음 열리는 '장미대선' 과정 역시 이변과 불가측의 연속이다. 촛불 정국을 주도했던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대세론이 오랫동안 지배하다가 지난달 말 각 당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자강론을 외쳐온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순식간에 문재인과 양자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최근 안철수의 지지율이 '보수와 호남 사이의 딜레마' 때문에 빠지고 있지만 올 대선이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 선거와는 다른 여러 변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전국적인 부동층 비율이 20~25%나 나온다. 특히 선거가 다가올수록 부동층이 더 늘어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통상 이맘때 부동층 비율은 10% 내외다.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도 30%를 훌쩍 뛰어넘는다.
무엇보다 아직 표심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샤이 보수층'의 향방은 최대 변수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5년 전 대선에서 박근혜를 찍었던 보수층 유권자' 중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비율은 20% 정도 되는 것으로 나온다. 지역별로 보면 PK가 25% 가까이 돼 전국적으로 가장 높다. PK 유권자들이 그만큼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PK는 그동안 보수의 기반이었지만 촛불 정국 이후 부산 출신 문재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같은 PK 출신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도 막말과 돼지 흥분제 논란에도 안보 전략으로 보수층을 자극하고 있다.
한 정치평론가는 "샤이 보수는 안철수냐, 홍준표냐를 놓고 고민하는 '햄릿'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특히 연령으로 보면 샤이 보수는 60대 이상이 많다. 이들은 아직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했지만 이미 지지 후보를 정했다고 밝히는 20, 30대 젊은 층보다 투표장에 나갈 확률은 더 높다. 샤이 보수가 많은 PK가 5년 전에 이어 다시 캐스팅보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직선제 도입 이후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정부로 김영삼과 노무현 정부를 꼽고 싶다. 문민정부를 세운 김영삼은 하나회 숙청 및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단죄 등 군사문화 청산과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공직자 재산등록 등 당시로서는 초헌법적인 개혁들을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변방의 마이너리티' 노무현은 산업화의 방패막이 속에 수십 년 동안 구축해놓은 기득권의 높은 벽을 사실상 단기필마로 깨뜨렸다.
이번 선거에서도 누가 당선되든 차기 정부는 변혁과 쇄신을 내걸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이나 안철수 둘 다 개혁을 지상과제로 놓고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 곳곳에 켜켜이 쌓여 있는 적폐를 청산하고 제4차 산업혁명시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좌고우면할 여유가 없다.
김영삼과 노무현, 여기에다 문재인이든, 안철수든…. 우연인지 필연인지 한국 현대사의 중대 기로에서 혁신을 주도한 또는 주도할 이는 PK 출신이다.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진검승부는 고향 PK에서 갈릴 것이다. 확실한 끝내기 한 수가 아쉬운 문재인과 막판 중도 보수 표심을 업고 뒤집기를 노리는 안철수. PK의 표심은 과연 누구에게 미소지을까.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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